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동아빠 구재학 Nov 30. 2022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자전거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 이어령 (1934 ~ 2022)



2022년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올해는 내가 좋아했던 여러 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해이다.

국민MC 송해, 넥슨 김정주 회장, 월드스타 강수연..

그리고,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


젊은 시절 그분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TV에서 뵐 때도 날카로운 눈빛과 카랑카랑한 음성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는데,

강연장에서 뵌 그분은 전장에 선 장수와 같았다.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는 좌중을 휘어잡았다.

어릴 적 서울올림픽 개막식 총기획자로 방송에 소개되어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이어령 선생이 방송에 나오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고정하곤 했었다. 그분의 말씀은 끊김이 없었고, 시대의 지성다운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도 위대한 지성의 뒤편에는 여린 내면이 있었다.

지성인으로서의 선생은 칸트도 두렵지 않지만,

시인으로서의 이어령은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고 아프고 무너지는 한 아버지이자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는 여린 인간이다.


이어령 선생은 2022 2월에 세상을 떠났고 선생의 외동 이민아 목사는 10 전에 먼저 떠났다.

그리움은 10년간 고여 있다가 선생의 유고 시집이 되었다.

딸이 살던 헌팅턴비치에서 아버지는 이제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딸에게로 직접 가셨다.

'네가 간 길을 이제 내가 간다.' 선생의 마지막 시집의 서문이다.

부디 하늘에서 그리운 따님과 함께 평안하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비극은 왜 반복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