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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 Feb 12. 2024

9) 자살이라는 무거운 단어

9) 자살이라는 무거운 단어


'자살'이라는 단어, 입에 담기도 무거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경찰관은 그 누군가 중 하나다.


어느 날 소방으로부터 공동대응 형식으로 112 신고가 접수되었다.




112 신고 No. 0420 소방공동대응, "오빠가 숨을 쉬지 않는다."


해당 주소지를 확인하고 경찰차를 운전했다. 사건 장소는 ○○빌라 4층이었다. 아직 소방구급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철제 기둥 상단에 밧줄이 묶여 있었고 신고자인 여동생이 그 옆에 울며 서있었다. 그리고 이미 숨이 멈춘 남자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망현장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경찰관은 사체 변경 이유에 대해 민감하다. 왜냐하면 타살(살인 등) 혐의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고자에게 발견 경위 및 사체 변경 이유를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제가 황망한 마음 모두 헤아릴 수 없겠지만 확인 절차가 있으니 몇 가지만 간단하게 물어볼게요."

"동거 가족은 있나요?"

"처음 봤을 때 어떠한 상황이었나요?"


신고자인 여동생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빠는 몇 년 전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이혼하고 혼자 생활했어요. 그리고 최근 자주 전화 연락이 왔었고 행복하라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오빠가 전화를 받지 않아 이상한 마음이 들어 오빠 집에 와보니, 목을 맨 상태로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주방에 있던 칼로 줄을 자르고 바닥에 눕혔습니다."


잠시 뒤, 그녀는 감정이 올라오는지 갑자기 "어떻게 좀 해봐요!"라고 나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나는 빠르게 방 안을 훑어보았다. 물건 등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시체의 양손 끝을 살펴보았다. 저항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다른 사람과 다툼이 없었다.'는 것을 추정했다.

나는 전형적인 목맴 자살 현장으로 생각했다.


좀 더 확실하게 자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목을 살펴보았다.

'어? 목맴 줄 흔적이 옅네?' 지금껏 내가 경험한 목맴 자살 시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목에 깊은 상처를 보였다.

이 경우는 목맴 후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손과 발은 이미 중력의 영향으로 혈액이 모여 검푸른 색깔을 보였고 차가웠다.

목맴 상태에서 심장이 멈추었음을 의미한다.


우연히 시체의 가슴에 손을 올렸는데 손, 발과 다르게 온기가 느껴졌다. 순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동료에게 말했다.

"이 사람 허리띠 풀어줘! 그리고 다리 올려줘!"


약 5분간 두 손으로 흉부압박을 했다.

이 때문에 손바닥으로부터 상대방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머리로 전달되었다.


잠시 뒤,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상황을 인계했다.

119 구급대원은 자동제세동기(AED)를 이용하여 누워 있는 남자의 심장에 전기 충격하는 방법의 응급처치를 한 다음 빠르게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나와 동료는 신고자인 가족을 경찰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문 앞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곧 의사로부터 사망선고가 있겠지...'

왜냐하면 지금 응급실에서 심폐소생 처치를 받고 있는 저 남자의 손과 발은 이미 얼음처럼 식었고 얼룩(시반, 중력에 의해 형성되는 혈액고임 현상)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변사자처리 절차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기울였다.


의사가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물었다. "병원 도착 전 누가 이 환자에게 조치했나요?"

 나는 있었던 일을 의사에게 설명했다.


의사는 나와 신고자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어서 의사는 말했다. "하지만, 산소공급 단절된 시간이 있어서 뇌손상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계속 치료를 위해서는 더 큰 병원으로 전원 조치 해야 합니다."


이후부터는 가족인 신고자의 선택에 따라 연명치료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구대로 돌아가는 경찰차 안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차 창에 큰 한숨을 불었다. 그러고 나서 중얼거렸다. "자살하면 안 되는데."


나는 자살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한다. 왜 이렇게 절망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들은 왜 가족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야 변사현장에서 느꼈던 우울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 당 24.4명 자살하는 것으로 OECD 회원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자살의 원인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가 '지구대 경찰관', '실종 수사 전담 수사관'으로 겪은 자살 사건들을 크게 원인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았다.

○학교 교우 관계 어려움(일명 따돌림)에 의한 자살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에 의한 자살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자살

○충동적 자살


위의 충동적 자살을 제외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 이웃, 친구, 동료의 지속적 관심과 대화 그리고 전문기관 심리 및 약물 치료가 중요하다.




직무상 경험에 비추어

나는 자살의 원인 중 하나를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과도한 노출'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용에 대한 적당한 양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비교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병이 있다면 병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빈곤으로 생활이 어렵다면 각 행정복지센터의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을 통해서 또는 시민단체, 사회복지관,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때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 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눈앞에 커다란 산을 혼자 오르려고 하면 어렵고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힘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나만의 것이 아니다. 자살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힘든 짐 때문에 어렵다면 잠시 쉬어가자.


["단테, 최후 심판의 날이 오면 죽은 자 모두가 자신의 육체를 되찾고 고통도 덜게 되지만 자살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네. 스스로 버린 육체를 다시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들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도 이후에도 시체를 끌고 이 비참한 숲으로 다시 돌아와 육체를 자기 영혼의 가시나무에 매달아 두게 된다네."]

-단테의 지옥여행기, 개정판 10쇄, p.139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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