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 후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좁은 개인 옷장 문을 열고 경찰 외근 제복을 바라봤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자신에게 인사를 했다.
112는 범죄 긴급 신고 전화번호이다. 각종 범죄에 관하여 본인의 피해 또는 타인의 피해 그리고 목격 등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국민 서비스 만족이라는 경찰 활동이 추가되어 각종 생활민원, 다른 정부 기관의 업무까지 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치안 현장은그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경찰이범죄 관련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 2조는 경찰의 직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1.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
2. 범죄의 예방ㆍ진압 및 수사 2의 2. 범죄피해자 보호
3. 경비, 주요 인사(人士) 경호 및 대간첩ㆍ대테러 작전 수행
4.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ㆍ작성 및 배포
5. 교통 단속과 교통 위해(危害)의 방지
6. 외국 정부 기관 및 국제기구와의 국제협력
7.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
이 법률의 1호, 4호, 5호, 7호에 의해 경찰은 범죄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생활 불편 민원, 다른 정부 기관의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주정차 위반, 이륜차 소음, 이륜차 번호판 미설치, 차량 번호판 영치, 방치 차량,층간 소음, 노점상 단속, 차량 매연, 도로 파손, 유기 동물, 동물사체, 감염병 위험, 병원 진료 서비스 문제, 도로 위 물건 쌓아두는 행위, 음식점 위생 단속, 택시 이용 관련 분쟁, 공원 내 음주 또는 흡연 행위 및 텐트 설치, 쓰레기 투기 등 대부분의 생활 불편 민원은 지방자치단체(구청, 시(도) 청)가 담당 기관이지만, 많은 국민들은 112를 찾는다.
또한, 화재 및 구조, 구급 담당 기관은 소방청이지만, 경찰도 현장에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법원의 강제 집행 및 채무자 감치를 위한 구인장 집행, 소재 촉탁, 보호관찰 위반자 검거 및 수색 등은 법무부 담당이지만, 경찰도 협조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는 출입국 관리소 담당이지만, 경찰도 체포와 신병 인계를 해야 한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임금 등 분쟁은 고용노동부 담당이지만, 경찰도 분쟁 조정에 개입해야 한다.
이 외에도 병무청, 교육청 등 많은 정부 기관이 각자 맡은 고유 업무가 있지만, 경찰은 그들과 협력하거나 대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의 업무 범위가 너무 넓다.
따라서 경찰의 인력과 자원이 분산되어 범죄 관련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경찰의 인력은 유한하다.
전체 13만 명 중 경찰 내부 행정 업무 등 담당자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경찰 활동하는 경찰관의 수는 약 7만 명이다. 이를 전국 지역 관서별로 나누면 1 급서 기준으로 평균 1개 팀에 10명~15명 내외로 구성된다.
우리 경찰서의 경우 하루 112 신고 건수가 약 4천 건 내외이니, 현장 경찰관의 인원은 늘 부족하다.
경찰의 주 업무라고 할 수 있는 범죄 관련 신고 처리, 검거 예방 업무에만 집중해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경찰은 범죄 관련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를 맡아서 수행해야 하므로, 집중해야 할 일이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어렵다.
경찰의 업무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은 경찰 업무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저해하고,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문제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봤다.
첫째, 신고 접수처를 통합해야 한다. 현재는 112, 119, 122, 111 등의 긴급신고 번호가 있고 민원 관련 110, 120, 182 신고 번호가 있다. 이들 신고 번호를 하나로 통합하여 접수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고 초기부터 내용에 맞게 각 기관에 분배될 수 있다.
생활민원, 범죄, 화재, 구조 등 그 내용에 따라 명확하게 책임 기관이 설정될 것이다.
둘째, 경찰의 업무 범위를 지금 보다 세분화하여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
현재의 경찰관직무집행법 2조의 규정을 '범죄로부터'의 내용을 삽입하여 경찰 개입 요건을 구체화 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정부 기관의 업무를 경찰에게 부담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경찰의 인력과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경찰청은 그간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마다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여 인적, 행정적, 물적 등의 자원을 분산시켰다.
경찰청이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새로운 부서를 신설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본적 경찰 역할인 '범죄로부터' 시작하는 일을 핵심으로 여겨 그 역량을 공고히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안타깝게도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 차도 참사 사건이 있다.
이 사건들은 대표적으로 담당기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그 구체적 행동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소수의 현장 경찰관의 판단 및 조치에 전부를 의존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신속해야 할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각 기관의 유기적 협조가 실패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는가?
누구보다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재해 재난 업무는 다른 기관이 주 업무 담당이다.
하지만 경찰의 주 업무처럼 비친 사건으로 경찰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