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E 기획자의 두 번째 이야기
지옥은 자꾸만 연장되었었다. 솔직히 "지옥"이라고 말하는것은 과한 표현일수도 있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입사하고 나서 익숙해질 찰나도 없이 떠나왔던 사무실의 내 자리에는 먼지만 쌓여갔고, 나는 매일 매일 집에서 모니터만 바라보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과 얼굴 꺼진 회의를 하면서 살아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슬랙채널의 나에게 텍스트를 보내는 매게체들이었으며, 영상 회의를 할때 얼굴을 끄고 목소리만 들리는 그 어떤 존재들이었다. 반복해서 회의를 하다보면 그냥 그 사람의 이름과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만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온라인으로 만나고 온라인으로 퇴사하셔서 몇년이 지난 지금 이순간까지도 이름과 프로필 이미지로만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매일 매일 집에만 있고, 가족 외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모니터 상의 업무만 반복되며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새로운 경험도 없었고, 그 어떤 우연의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옥은 반복이란 말도 있던데... 이런건가 라는 생각을 자주 헀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맥북 앞에 앉고, 일하다가 배달음식을 시켜서 티비 앞에서 밥을 먹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고, 퇴근시간이 되어도 딱히 즐거울 것도 없었다. 퇴근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것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공간에 난 있는데 퇴근과 업무의 경계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고 일했는데 또 모니터를 보면서 넷플릭스를 보는것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출근전이나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 다녀오곤 했었다.
가끔씩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일정이 잡히다가도 계속해서 취소되기 일수였다. 이건 사적인 약속도 그랬고 회사에서의 이벤트도 그랬다. 너무나도 사람과의 접촉에 목말라있던 나에게는 이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일정이 잡히면 기대에 부풀어 기대치를 올리다가 꼭 막판에 취소되는걸 겪으면서 더 큰 좌절을 겪었기 떄문이다. 그러다 오랫만에 .. 정말 오랫만에 출근을 할일이 생기면... 나는 전날 부터 너무 설레였다. 미쳤지. 내일 사무실을 나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울지...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갈지... 이런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정말 정말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고 나도 드디어 회사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었는데, 나에게 처음으로 삼겹살 먹자고 제안했던 분과 출근을 하고 싶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나는 너무 큰 위안을 받았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이 있다는것도 즐거웠지만, 실제로 가끔은 출근을 해도 텅 빈 사무실이 아니라 "출근메이트"가 있을 수가 있다는것은 어둠속의 한줄기 빛 같았다.
우리회사가 출근을 가장 심하게 통제하던 시절, 누군가가 사무실 출근을 하고자 한다면 하루전에 출근을 해야하는 사유를 적어서 HR과 상위 조직장 승인을 각각 받은 후 24시간 안에 코로나 자가검진을 해서 음성이라는 것을 온라인 상으로 제출 한 후,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그 모든것을 인정했다는것을 체크한 후 단 하루만 쓸 수 있는 스티커를 받아서 사원증에 붙이고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었다. 사실상 출근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정말 극 소수의 사람들만 출근을 했었다.
하지만 나와 나의 출근메이트는 그 관문을 뚫고 함께 출근을 했었다. 그렇게 같이 출근을 해서 함께 먹는 점심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 이렇게 힘들게 출근했는데 저녁도 먹고 집에 갈까요? 이런말을 하면서 우리는 저녁도 먹고 집에 간 날이 있었다.
출근메이트님 그때도 지금도 너무 소중합니다.
비슷한 시절 어떠하셨는지...@kimhanryang님의 이야기를 이어서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