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투명해진 봄비

by 김중근

봄 비

- 김 중 근

빛이 눈부시게 빛나던 하늘에서 봄비가 내린다. 때아니게 강한 빛이 온몸을 뚫고 들어와 멋지게 장식해 놓은 옷들을 한 겹 두 겹 풀어 헤친다. 오늘은 내 삶의 모두를 걸머진 생명의 근원처럼 봄 비에 젖어 침묵한다. 목련은 바람을 피워 꽃을 만들고 햇살을 엮어 초록 빛 잎을 붙여냈다. 목련이 서있는 산아래, 봄비 끝없이 쏟아지던 지난 밤이다.


나는 봄비 지나가는 길목에서 목련꽃 다 질 때 까지만이라도, 옷고름 단아하게 여미고 기다릴 봄의 모습을 저 비가 오는 하늘에 그려본다. 어느새 말없이 내린 단 비에 싱그런 녹음으로 변해버린 가지 사이로 목련은 점점이 꽃잎만 날린다. 초연히 서있는 목련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인지 모를 설렘으로 들떠있던 상념들이 창문 제치는 비 바람 소리에 놀라 목련 꽃 같이 흩어져 지워진다. 흰 눈처럼 피어있던 목련화 애닯게 떨어진 산 아래 길에 아직도 비는 말없이 내린다. 아침 새들이 우짖는 나뭇가지 사이로 서성이며 떠나가는 이 봄비를... 한 겨울 산 아래 여울 어름장 밑 물 짓는 소리로 잡아보려하지만 매정하게 비 바람에 실려 떠난다. 천상 시집 갈피 사이에 목련 꽃 잎 몇 잎 고이 간직하는 것으로., 마음의 병이 더 심해질 때마다 꺼내봐야겠다.


밤새 종일 내린 비에 연록빛 산은 젖는다. 짙은 녹음으로 줄달음치는 봄비는 애닯은 가슴으로 온 대지를 적신다. 단비를 기다리던 수천 가슴 마다에 생명의 에너지를 뿌린다. 한 철 묵었던 미세 먼지와 마음의 때도 씻어내리니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하찮은 돌멩이 사이로 핀 이름 모를 풀 무리까지 환희와 생명의 소리로 가득차있다. 봄비는 옥빛 하늘 속에 담아논 맑은 푸르름을 내리고 구름에 갇힌 상념을 잿빛 안개로 피어내고 있으니, 봄은 부를수록 곱게만 그려진다. 행복이 절로 솟던 봄의 여울이 짙푸른 꿈질로 채색되는 순간이다.

끝없는 희망을 가득 담아놓은 세월이 줄기차게 내린다. 봄 비에 섞여 허공 속으로 흐른다. 침묵의 지상으로 새 푸른 빛을 감춘 채 봄 비는 신비롭게 내린다. 시름시름 그 무엇인가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의 파고에 비는 내린다. 매향(梅香)같이 은은한 향기가 은연중 스며든다. 마음에 침몰된 오색빛 무지개와 어울려 놀고 , 밝은 해와 눈이 부신 나무를 그리던 정숙한 빈 자리에 비는 그렇게 내리고 봄은 그렇게 성숙된다.


나는 지금 투명해진 봄비 내린 풍경을 멀거니 바라볼 뿐 이다.

- 2023년 4월 5일 봄비가 내린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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