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도 가는 길
- 김 중 근
창을 열지 않아도 빛이 안을 환하게 뚫고 들어오는 은은한 오전이다. 아지랑이 꼬물거리는 주위의 들판은 봄이 오는 소리가 요란한데 벨 소리가 요란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다. 딱히 누구라고 꼬집기보다 서로 마음들이 통(通)해서 누군가 불러주길 기대하던 터였다. 내일 토요일이니 오전 7시까지 “유원소라 아파트”로 준비해서 나오라는 것이다. 전남 무안군에 소재하고있는 “임자도”라는 섬에 가자는 말에 퇴근 길 마다않고 같이 동행할 일행들과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행락 물품들과 먹거리들을 챙겼다. 준비만으로도 모두 콧노래가 절로 난다.
어린 날, 인천 앞 바다 멀리 보이는 섬들을 보며 동경했던 미지의 세계, 선듯 발 닿을 곳만 같았던 곳, 작은 배낭 하나 건너메고 훌쩍 떠나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나는 백령도에서 태어나 꿈이 가득했던 섬들을 이 날 이 때까지 배 타고 멀리 나가보지 못했다. 그 탓에 그 설레임은 누구보다 컸다. 내일도 날이 좋으려는지 아파트 건너 소나무 숲 사이로 번지는 빨간 저녁 노을이 곱다.
멀리 떠나는 날 차창 밖의 풍경들이 유난히 평화롭다. 한치 앞도 안보이던 안개가 걷히면서 화사한 빛이 온누리에 번진다. 임자도 가는 길엔 높고 새파란 하늘 만큼이나 환한 일행들의 행복이 가득해져온다. 느긋하게 차창을 내다보니 차도를 따라 달려오는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새봄이 완연하다. 차창 유리에 비친 우리들 모습이 마냥 어린 아이들 처럼 희희낙락(喜喜樂樂) 즐거움과 기대로 들떠 있다. 김제를 지나 무안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주말 행락객들의 차량들이 기분좋게 질주하고 줄포, 고창, 영광을 이은 주변의 논과 얕으막한 산으로 펼쳐지는 봄이 익어가는 도로변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저 봄빛 찬연한 푸른 하늘 위에 떠있는 구름마저 점점 가까이 오고 너무도 빛이 나서 생활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까지 새파란 하늘로 날라오른다. 무안 나들목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나와 한참을 달리니 용학리를 지나서 양매리가 나온다. 양매리에서 좌회전하여 지도라고 쓰인 푯말만 보고 계속 달리다 읍내리 쪽으로 빠졌다. 감정리에 이르니 올망졸망 크고 작은 섬들이 고립되어있는 섬들을 연결하면서 섬은 물위에 떠있는 연잎처럼 아름답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다도해 바다 만을 보고있는 모두는 한순간을 정신없이 수평선 넘어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주시한다. 파도에 밀려오는 은빛 햇살을 주체할 수 없어 가는 탄성들이 흘러나온다. 물을 베고 자는 바다에 취한 섬이 보인다. 파도가 우리를 흔들어 깬다.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해송과 어울러진 다도해의 해변은 우리에게 깜짝놀랄 감동을준다,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시야에 들어온 바다가 모두의 마음에 채워진다. 지극한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순간들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저곳.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기만 하다. 일행 중 한 분은 목사님 사모(師母)로 무안에서 자라고 컸다. 그녀 덕분에 초행 길이었지만, 우리가 늘 다녀 본 길같이 손쉽게 길을 찾을 수 있어 여행 길이 더욱 즐거웠다. 임자도라는 팻말을 따라 조금 느린 속도로 차를 움직여서 선착장에 이르니 포구에 몇 채 되지않은 마을이 한가로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바다와 더불어 사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도 무척 여유로울 것만 같다. 주차장을 끼고 언덕 위에 미완성된 집을 따라 올라가면서 거센 바다 바람에 양볼이 얼얼 할 정도로 시렸다. 마침 도착된 시간이 점심 무렵이어서 승용차를 적당히 주차시킨후 그 집 안으로 올라섰다. 들뜬 마음으로 차에서 빨리 내려와 몇 가지 취사 용구를 챙겼다. 번갯불에 콩을 튀기듯 밥을 해먹고 미리 예약해둔 배표 시간에 마추느라 그 안에서 놀다가 차 안으로 돌아와 선착장까지 내려왔다. 임자도는 무안군 지도라는 곳에서 승용차가 선적된 선편으로 15분정도 걸렸으며 하선후 임자도 대광 해수욕장까지 승용차편으로 10여분 거리였다. 공해로 부터 벗어난 산과 투명한 하늘과 그리고 정감있는 섬 마을들이 햇살 아래 부끄러운 듯 수줍은 모습으로 보인다. 해변가에 창 넓은 유리를 단 호텔과 숙박 시설들이 도시의 러브텔과 달리 자연과 조화롭게 서있다. 천혜의 백옥같이 하얀 백사장은 입자가 너무 곱고도 치밀해서 발이 빠질 염려가 없어 비행기 활주로도 쓸 수 있다고도 한다. 힘을 내어 내달려본다. 치달려도 발자욱만 간신히 남을 뿐이다. 2키로 미터 정도의 단단한 백사장 위로 파도가 밀려온다. 그 전경은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해변과 달리 바닷물색이 에머럴드 같이 옥색이다. 투명한 연두색 물 빛은 참으로 살게하는 힘을 준다. 그동안 살아서 지독히 힘들었던 그 괴로운 시간들이 부서지고 없어진다. 해변에 닿자마자 부서지는 은빛 파도를 보는 순간 혹독했던 시름도 꿈결 같다. 그 고통들도 일순간 부서진다. 꿈결같은 시간들이 이후에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바다는 기쁨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기쁨을 삼킨다. 임자도에서는 한줌의 인정도 용납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마음에도 도량있는 바다가 생긴다.
돌아오는 길에 청정한 인성과 마음이 훈훈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포구 횟집이 눈에 띈다. 우린 그 집에서 손가는 대로 저며진 회를 안주삼아 모처럼 자연과 함께 일치(一致)된다.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이 우리의 생활 문화와 행락 문화를 바꾸었다. 마음만 먹으면 땅긑 마을까지도 하루에 내 달려 올 수 있으니 말이다. 임자도까지 익산에서 불과 2시간 30분여만에 도착된 거리다. 짧다면 짧은 거리다. 앞으로 우리 세 가족 임자도와 함께한 시간들을 파도가 이글거리는 백사장 모래 밭 위에 새겨뒀으니 일곱색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언젠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시 그 길을 더듬어 추억 찾기에 나설 것이다.
일곱색 무지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지금은 임자도의 아름다움과 견줄 수 없다.
2008년 4월초 어느 날 함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