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여름

생동하는 5월 초여름

by 김중근

초 여름


- 김 중 근


벌써 여름이 성큼 곁에 온 느낌이다. 초여름의 캠퍼스는 아침 햇살보다 먼저 피어나는 푸른 재채기로 가득차 있다. 연녹색 잎은 어린 아이의 미소처럼 가로수를 따라 엷게 번진다. 바람에 스치는 소리조차 젊고 싱그럽다. 강의동 뒷길을 지나가던 바람이 얼굴을 화끈하게 달구어 놓고 달아난다. 불과 수삼 일 전까지도 캠퍼스 강의동 사이를 휘적이며 돌아다니던 산들 바람이 좋아, 쫓아걷던 가로수 길이다. 유유자적 강의동을 휘돌아 거닐던 길도 이젠 서서히 따갑게 느껴진다. 교정 길을 따라 걷는 교수들의 발걸음은 오랜 세월의 지식과 학문이 쌓인 진지함과, 여름 앞에서의 잠시 가볍고 느슨해진 미소와 함께, 자국자국마다 가볍다.


여름이 빨리 오라고 기도한 것도 아닌데도 어느 틈에 남동풍이 등 뒤에 서서, 화끈거리는 열기 속으로 여름을 밀어놓는다. 한 교수는 손에 든 커피잔을 살짝 기울이며, 이 계절의 열기를 농담처럼 흘려보내고, 또 다른 이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멈춰서서, 아름다운 꽃이 진 자리에서 새로 돋아난 연한 잎을 바라본다. 그들의 대화는 학문과 계절, 젊음과 세월을 오가며 마치 오래된 시간의 행간을 거니는 듯하다. 마침 뙤약 빛 산책 중에 ‘왱’ 하고 말벌이 달려든다. 모두가 무서워 공중에 뿌려대는 손길은 연신 하늘을 휘젓는다. 어느 순간 한 방에 그를 떨어뜨린다. 아직은 따사한 기운이 있는 잔디 위로 흘러가는 봄과 함께 그는 풀썩 떨어져 숨을 죽인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두런거리며 거닐던 동료 교수들의 재잘거림에, 숨 죽이고 누워있던 잔디밭과 소나무 숲이 깜짝놀라 우리를 지켜본다. 햇빛은 건물의 담벼락에 부딪혀 반짝이고, 그 빛의 부서짐 속에서 나는 여름의 냄새를 맡는다. 먼 데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여름의 신경을 깨운다. 그리고 강의실 창가를 스치는 바람은 이 계절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중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등나무 넝쿨의 파골라는 많고 많은 일에 시달린 우리를 유혹한다. 언제나 휴식처가 되어 우리를 부른다. 숲속은 신선한 빛과 공기로 공해에 시달린 곳곳을 깨끗이 씻어주고 어루만져 주느라 푸르름이 한참이다. 때론 달콤한 오수를 즐길 수 있는 휴식처가 된다. 그럴 때마다 흐믓한 가슴이 벅차올라 새들을 불러 모은다. 휘파람 꽃 다발로 묶어 불어대는 지저귐이 들린다.


잔디 사이로 난 잡초와 네 잎 크로바와 솔향이 그윽한 소나무는 반갑게 우리들을 맞아준다. 깜짝 놀라긴 했어도, 파르스르한 금속빛 긴 꼬리를 바짝 세우고 콩콩 뛰놀던 까치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갑작스런 교수들의 출현에 그가 화들작 놀라 빠르게 하늘을 가른다. 소나무 숲으로 몸을 숨긴다. 오늘 따라 그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하필이면 후회와 실패만 거듭되었던 곳으로 날아가니 안타깝다. 그가 자기의 의지대로 날아간 것이니, 내가 그리 탓할 바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신명나고 번성하게 살 그런 곳으로 날아갔으면 좋았을 것을....아쉬움이 크다. 지금은 빈약하지만 창대한 꿈을 이룰 곳이면 내 마음도 한결 위안이 되었을텐데... 내의지가 아닌걸 어찌 하겠는가....다음번 산책 길엔 내 의지대로 날아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살짝 더워진 바람이 뙤약 빛처럼 따가운 하늘가로 날고, 하안 뭉개구름은 초 여름의 땀방울로 젖어서 웃음 짓는다. 따가운 햇빛과 강한 햇살이 더 이상 걷기에 힘들게 만든다. 걷다 보니, 따가움조차도 어떤 문장의 한 구절처럼 느껴진다. 덥지만 기분좋고, 후덥하지만 생동하는 5월 초여름의 캠퍼스는 이토록 살갑게 여름의 얼굴을 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쏟아지는 초여름 달빛과 별들의 반짝임에 설레임이 만발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다.



- 2010년 5월 15일. 대학 캠퍼스의 가로수 길을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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