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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이겼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51

by 태화강고래

아침부터 눈이 몰아쳤다. 지난 주말 감격스레 보았던 눈도 자주 보니 이 또한 나도 모르게 시들해졌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머릿속은 갈까 말까를 반복해서 돌리고 있었다. 생활비를 쪼개 취미생활을 하겠다는 원대한 결심으로 캘리그래피 수업을 신청해 놓고, 흔들리는 날 보았다. 지난주 아파서 못 갔다. 오늘이 가야 하는 날인데, 눈은 멈추지 않고, 감기도 아직 남아있다.


'그래, 괜히 나갔다가 감기만 심해지면 안 되니 오늘까지 쉬자'


그렇게 안 가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오늘 수업 안 오세요? 등록한 게 아까운데, 안 오면 돈 날리는 겁니다.

지금 못 오겠으면, 오늘 저녁이나 토요일 오전에 오세요. 돈이 아깝잖아요."


순간.

돈이 아깝다!


'그래, 돈이 아깝지! 이러면 안 되는데, 게을러진 내 마음아!'

돈아, 추위도, 감기도 다 이기는구나. 무적의 돈, 네가 이겼다. you win!


부랴부랴 가방을 챙겼다. 마스크 쓰고 롱패딩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눈길을 걸었다. 도보로 20여분 걸리는 곳까지 발걸음을 부지런히 그러면서도 미끄러질세라 힘을 주며 걸었다. 새하얀 탄천길 위에는 운동하는 사람의 발자국만 간간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캘리그래피 강사님 댁에서 선배들이 나를 웃으며 반겨주었다. 건너편 선배는 수묵화에 글을 쓰고 있었고, 다른 선배는 시집의 긴 글귀를 정성쓰레 마무리하고 있었다. 민망한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숙제 검사를 받았다. 부족한 부분을 주황색으로 체크받았다. 역시 혼자 쓰는 것보다 포인트를 짚어주는 지도를 받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은 은근한 자신감이 생겼다. 가로 세로획의 굵기를 통일하고, 한 자 한 자마다 어우러질 수 있게 간격조절을 잘해야 한다.


숙제 검사 후 선생님이 쓴 교본을 받았다. 연습해서 다시 숙제 검사받으러 와야지. 결심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심을 잊지 말고 계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쪼록 딴 맘을 먹지 않도록 하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날씨는 약간 매서워졌어도 돈값하고 온다는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다. 웃픈 현실을 그린 시트콤을 한 편 찍었다. 돈에서 자유롭게 사는 그날이 오길...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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