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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한 살 더 먹지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61

by 태화강고래

새해 첫날.

어제와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인과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에 등장한 청룡을 만나고, 네이버, 구글, 다음과 같은 포털 대문에서 2024 청룡의 새해인사를 넙죽 받은 하루다. 기분 좋게 "아자, 아자"를 속으로 외친다.


새해 첫날이면 우리 가족은 시댁에 간다. 울산에 살았던 지난 4년을 제외하고 매년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 댁을 방문한다. 어제 아이들과 함께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TV로 지켜보며 소원을 빌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평소처럼 10시가 약간 지나 시댁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안아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아버지는 83세, 시어머니는 79세가 되셨다. 젊어서부터 병치레를 많이 하신 분들이라 아픈 거라면 지긋지긋해하신다. 각자 건강관리를 잘하시는 편이라 지금은 크게 아픈데 없이 평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신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뵐 때마다 내심 속으로 부러웠다. 10여 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불편한 몸으로 홀로 지내시는 친정엄마의 노후와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비교해서는 안되지만,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본인 집에서 손수 음식을 하고 두 발로 원하는 곳에 다니시는 시부모님의 일상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노인의 삶이었다.


시어머니는 작년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자주 다니셨다. 친구분이 파킨슨병으로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을 지켜본 탓인지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해 걱정이 한층 많아지셨다. 노년의 걱정스러운 내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도 나이 들어가는 삶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기억력 감퇴와 노쇠로 일상생활이 불편해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말씀은 예전부터 늘 들어 익숙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셨다.

내 머리 좀 봐. 정수리와 뒤통수 쪽에 흰머리가 많이 났어. 보이지? 머리카락이 힘없이 늘어지면서 빠지는데 너무 슬프더라. 너무 속상해 딸과 통화하면서 울었어. 그래서 딸이 가발을 사 왔는데 어색하고 불편해서 못 쓰겠더라, 대신 백화점 가서 모자하나 샀어. 사람들은 갑자기 내가 모자 쓰고 나타나니까 멋쟁이 됐다고 놀라더라. 딸이 두피 문신도 얘기했고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해롭다고 해서 안 하기로 했어. 그냥 모자 쓰고 다니다가 앞쪽 머리 길러서 뒤로 넘겨보려고 해.

시어머니는 진심으로 본인의 외모에 신경을 쓰고 계셨다. 친정엄마는 파마는 하는지, 어떻게 관리하고 지내시는지 처음으로 물어보셨다. 친정엄마의 요양병원 생활에 대해서는 자주 물어보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궁금하셨나 보다.

코로나 전에는 요양병원에서 미용봉사자들이 잘라주거나 병원 근처 미용실에서 커트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간병사들이 지금은 대강 잘라주죠. 파마는 아프고 나서 한 번도 안 했어요. 병원생활하니 흰머리 그대로 두고 커트만 하고 살죠.


본인보다 젊은, 며느리인 내가 항암치료 후 지금껏 정수리가 휑한 상태로 지내도, 가발을 쓰고 다녔어요, 모자를 쓰고 다녀도, 별로 묻지 않으셨다. 사적인 이야기니, 아픈 상처니, 안 물어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80세 가까이 돼서도 외모에 신경은 쓰이기 마련이고, 나이 들어 겪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 적응될 법도 한데 마주할 때마다 낯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병 때문에, 노화 때문에 몸이 예전같이 않다는 것에 서글퍼하고, 내 것의 일부로 받아들여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시어머니도 여전히 본인의 변화에 힘들어하셨다. 요양원 입소 전날에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도 하셨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집에서 마감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공평하게 누구나 한 살씩 더 먹는다. 누구는 설레고, 누구는 두렵다. 희망적인 내일보다 현실적인 노후가 길어지는 삶의 한 장면을 보고 왔다. 마음이 무겁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같은 종점으로 향해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는 버스가 멈출 때까지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안락하기를 바란다. 자기 앞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희망찬 내일을 살자"는 말은 한참을 산 노인에게는 어쩌면 공허한 말이 되어 귓가에 들리지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이상적인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뵐 때마다 내 노후가 곁에서 말을 거는 듯하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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