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 언니 목걸이요, 불가리건데 500만 원짜리예요."
"그래? 그렇게 비싼 거였어? 보고도 몰랐네."
"저 언니네 돈이 많은가 봐요."
"코로나 특수로 인센티브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덕분에 실물 구경 잘했네."
집 앞에서 지인과 이야기 중이었다. 약속이 있다고 꽤나 신경 써서 단장하고 지나가는 또 다른 지인을 만났다. 얼마 전에 만날 때도 똑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난 알아보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명품 목걸이를 했는데도 몰라주는 내가 서운했겠다 싶었다. 불가리 목걸이라고? 검색해 봤다. 베스트셀러라는 표시와 함께 목걸이가 번쩍번쩍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비싸다!
연예인도 아닌데 이런 걸 사는구나!
저 언니도 큰맘 먹고 샀겠지. 살 능력 있어 사는데 누가 뭐라겠어. 아무튼...
그뿐이었다. 명품세상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자기 분수를 알고 살아야 속이 편하다. 난 내 분수를 안다. 샤테크 같은 말이 들릴 때면 국민 명품백 같은 샤넬 가방하나쯤은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신혼여행 때 산 가방이야기를 꺼낸다. 결혼 예물로 받은 루이비통과 구찌가방이 있다. 굳이 필요 없는데 그때 아님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샀던 그 가방, 살다 보니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덕분에 회사 다닐 때 잘 들고 다녔다. 길거리에서 3초에 한 번씩 본다고 3초 백이라고 할 만큼 눈에 자주 보였던 루이비통 가방도, 인기가 사그라들었는지 이제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집 유일한 명품백은 방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다.
처음 입주해서 살 때보다 다시 돌아온 아파트는 살짝 달라 보였다. 거주자의 소득이 높아졌는지 아니면 소비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모를 정도로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우리 부부는 말한다.
"부자들이 많나 봐. 벤츠와 BMW, 그리고 제네시스가 사방에 깔렸네.
그런데, 왜 여기서 살까? 고급 아파트로 안 가고..."
"우리는 투싼에서 산타페로 갈아탄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환경에 따라, 능력에 따라 소비형태가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 형편상 명품에 대한 욕망을 품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명품을 사기 위해 모을 여유돈이 없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건강 챙기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노후 준비하느라 여력이 없다. 한 때는 여유롭게 살았지만, 사업실패 후 아빠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아픈 엄마를 살피며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삶을 사시지만,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계신다.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고, 매달 생활비로 남편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남편이 재테크를 하니 그나마 큰 걱정 없이 대출 없이 살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소비만 한다. 입만 열면 돈이 없다면서 여행 가고 명품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삶의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플렉스가 없는 팍팍한 삶일지라도 큰 불만 없이 잘 살고 있다.
명품을 소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다른 걱정이 없다는 뜻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프면 다 소용없다. 아픈데 명품백이 눈에 들어올 리 없고, 명품백이 건강을 회복시켜주지 않는다.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는데, 돈 쓸데가 많은데 어떻게 서민이 명품을 쳐다볼 수 있을까. 자연스레 내 삶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명품을 살 수 있는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의 구분을 넘어서 그저 내 마음이 평온하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부럽거나 사고 싶어 안달이 나지도 않는다. 명품 없이도 난 잘 살고, 앞으로도 잘 살기 위해 건강을 챙기는데 시간과 관심을 쏟는다. 명품 목걸이를 한 지인 덕분에 내 일상을 다시 돌아봤다. 아프고 나서 다시 깨달았다. 내가 주위의 소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내면이 단단해졌음을. 그래서 나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