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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06. 2024

시어머니가 엄마로 느껴질 때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2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내 자식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본성에 충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특별한 고부관계를 자랑하는 며느리들이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모녀관계도 어려운데 고부관계를 모녀관계이상으로 유지하는 비법이 있을까 가끔 궁금했다.


결혼한 지 15년. 지금껏 시어머니와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둔 고부사이로 다툼 없이 산다. 30년 넘게 키워준 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이기 때문에 며느리에게 며느리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나도 며느리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인정했다. 


주말 동안 시댁에 다녀왔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할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외식대신 음식을 사들고 갔다. 두 분이 매일 집밥만 드시니 색다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에 코다리조림과 낙지볶음, 그리고 연포탕을 준비했다.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가 끝나자 김치통을 내놓으셨다. 


"총각김치를 좋아하는 같아 담가놨어. 

 내 딸이지만, 며느리만 생각한다고 서운해할까 봐 직접 가져가라고 기다리고 있었어.

 먹고 떨어지면 또 얘기해."

 

시누이는 총각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은 우리 집에 갖다주라고 말했지만 또 하기는 눈치가 보이셨다고. 낼 모래 80세인 시어머니가 나를 위해 담그셨다는 말씀에 울컥했다. 가끔 그랬다. 엄마로서 내 마음을 흔드셨다. 며느리를 향한 감정표현에 어색한 시어머니는 가뭄에 나듯이 내 마음에 씨를 뿌리셨다. 손수 만든 음식을 통해 시어머니가 아닌 엄마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으신 같았다. 이번 총각김치발언도 그중 하나이다. 결혼 후 지금껏 시어머니 음식을 받아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생각해 보니 내가 아프고 뒤부터는 나를 중심에 두고 말씀을 하셨다. 


"생강차가 좋다고 해서 아버지 거 만들면서 만들었으니 가져가."

"마늘이 염증을 없애고, 항암작용을 한다니 많이 먹어. 마늘을 넣은 고추장이 맛있다길래 담갔는데 맛있어.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가져가."

"채소 많이 먹어."


내 엄마와 남편 엄마가 오버랩되며 엄마가 자식을 살피는 마음이 느껴졌다. 안 아팠으면 손수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줬을 텐데라고 항상 안타까워하는 내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지는 것 같았다. 서로가 조금씩 편안해지고 걱정스러우면 그게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니까. 가끔 남편의 엄마라는 사실이 도드라지게 보여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건 당연지사이기에 오히려 엄마처럼 느껴지는 게 낯설고 벅차다. 어버이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식사하러 갔다가 더 큰 사랑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통 가득한 총각김치를 소분해서 냉장고에 잘 모셨다. 한동안 혼밥하는 나에게 힘을 줄 것 같다. 엄마가 담근 총각김치도 참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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