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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05. 2024

어린이날에 선물 준 딸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1

어린이라면 기다리는 일 년 중 특별한 그날.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어린이라는 신분을 공식적으로 벗어났고, 딸만 남았다.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나갈 뻔한 오늘,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도 기억될 오늘, 그녀의 12번째 어린이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시누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직원과 가족들을 초대해 오픈 하우스 행사를 열었다. 큰 애가 6살이던 때를 마지막으로 시누이 가족과 함께 2-3번 어린이날을 함께 보냈다. 코로나로 행사를 못하다가 작년부터 재개했다는데, 올해는 딸과 내가 초대받아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비가 온다는 예보대로 비는 꽤 내렸고,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내와 야외무대에 준비된 체험프로그램과 공연관람을 통해 어린이날 하루를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게 보냈다.   


가장 놀랐던 프로그램은 바로 KPOP공연타임이었다. 여가수들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춤출 사람들을 불러들였는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나는 무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여 명 되는 사람들 가운데 딸이 떡하니 서 있었다. 대부분 대여섯 살 어린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35세라는 엄마가 한 명 끼어있었다. 랜덤으로 흘러나오는 아이돌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시간이 10여분 정도 흘러갔다. 익숙한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 전소미의 곡들이 참가자들의 몸을 움직였다. 


내가 저런 딸을 낳았다는 게, 나 같은 몸치인 엄마의 돌연변이 딸이 무대 앞 줄에 선 게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작년 9월부터 1주일에 한 번씩 문화센터 댄스수업을 다니는 것도, 집에서도 틈만 나면 음악을 틀어놓고 연습하는 것도 집안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색다른 풍경이다. 나와 달라서 때론 버겁고 때론 다행스러운 딸인데 무대에 제 발로 올라가 춤을 추는 모습에 입을 다물수 없었다. 옆에 앉은 시누이와 세트로 연신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댄스 경연 중인 아이들


댄스수업과 평소 연습 덕분인지 자신감을 얻어 누구보다 열심히 춤솜씨를 뽐내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시험공부했던 문제를 보고 슬그머니 미소 짓고 쓱쓱 푸는 학생처럼, 익숙한 노래에 버튼을 누른 듯 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재롱잔치를 다 보고 난 뒤 2명을 뽑는 순간이 찾아왔다. 


'딸이 뽑힐까? 내 눈에는 우리 OO이 밖에 안 보였는데...'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오 마이 갓. 내 인생에 이런 일이!'


"1등은 이 아이예요. 운동화 끈이 풀렸는데도 굴하지 않고 진짜 열심히 했어요. 물론 춤도 잘 췄고요."


일명 운동화 끈 투혼의 주인공이 되어 드론을 선물로 받았다. 참가만 해도 학용품은 다 주는 친절한 주최 측의 운영이지만 오늘따라 딸은 별 중의 별처럼 빛났다.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서 받아온 첫 선물인 드론을 안고 쓰다듬었다. 


상품으로 받은 드론


내성적이며 몸치인 부모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예상할 수 없어 일상의 기쁨이다. 농담반 진담반 집에서 하는 말을 실천해 봐야 될 거 같다. 


"오디션 한번 보러 가자!"


멍석은 시누이가 깔고 재주는 딸이 부렸다. 구경꾼이 되어 손뼉 치고 웃으며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건 나였다. 궂은 날씨에 감기 걸릴 것 같은 컨디션이었어도 딸과 함께해서 감기가 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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