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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08. 2024

종이꽃에서 사랑이라는 향기가 피어올랐다.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4

하교하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딸.

"엄마, 잠깐만 기다려요.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딸은 의기양양하게 손에 무언가를 들고 식탁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 앉아요. 보여줄 게 있어요."

"와! 이거 다 만들어온 거야!"

"네, 어버이날이라서 학교에서 준비해 왔어요!"



집안일 쿠폰, 부모성적표, 꽃이 가득 핀 손 편지에 용돈까지.

선물 종합세트를 받았다. 시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그 딸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어! 나중에 커봐! 엄마한테 잘할 거야!"


해마다 손 편지를 전해주는 딸이 기특하다. 물론 아들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에서 시키니까 몇 줄 써서 슬쩍 내밀기는 하지만 투박한 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애교만점인 딸이 눈앞에서 재롱을 떤다. 리코더 연주와 노래, 그리고 춤까지. 나도 엄마한테 이런 애정표현을 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없었던 것 같다. 무덤덤한 딸은 그저 감사의 편지와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것만 했었다. 언제까지 내가 과한 대접을 받을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텅 빈 가슴에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마음껏 채워 넣었다. 이 딸은 자라서 어떤 딸이 될까? 자기 살기에 바빠 쌩한 딸이 될지, 아님 근처에 살면서 살뜰히 챙기는 딸이 될지.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애들이 살 세상에는 부양할 노인이 더 많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알파세대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5월 5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버이날. 주말에 시댁에 다녀왔으니 오늘은 병원에 계신 엄마한테 같이 가자고 얼마 전 여동생과 약속했다. 세 모녀는 병원에서 만나 근처 죽집으로 갔다. 동생이 휠체어를 밀고 햇살 좋은 길을 걸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이라 매장에는 우리셋만 앉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동지팥죽과 전복죽을 시켰다. 엄마는 주문할 때부터 병동에서 도움을 받고 사는 간병사들의 죽부터 챙겼다.


"엄마만 먹고 들어가면 되지, 얼마 전에 샀는데 또 사다 주려고?"

동생이 못마땅한 듯 말을 내뱉고,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며 본인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병원에서 내가 의지할 사람은 그 사람들뿐이라서 챙겨야 해."


잠깐 얼굴 보고 가는 자식은 부모가 병원에서 24시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껴 하루하루 밑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순진한 전업주부로만 세상물정 모르고 살던 엄마가 노년에 10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살면서 눈치 백 단이 되었다.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웠어도 본인의 말년이 너무 초라하기에 자식들 보기 민망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 자식 앞에서 본인이 살기 위해 자식의 얕은 지갑을 열어 주변사람들에게 줄 간식거리를 챙겨야 하기에 언제 죽을지 모를 자신의 운명을 오늘도 어김없이 한탄한다. 


"내 큰 딸로 태어나서 고생이 많다. 너 낳아서 참 많이 써먹는다." 


웃고 떠드는 시간은 짧다. 항상 한탄과 미안한 마음이 길게 남는다. 어버이날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자주 찾아가 엄마의 건강을 살피고 간식을 충분히 사드리면 된다. 매번 병원을 찾을 때마다 마주하는, 노후 대책이 없는 부모의 노년 앞에 때로는 어깨가 짓눌린 듯한 고통에,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민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적이 거의 없다. 


그런 기분으로 돌아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안 그래도 기운 없는 몸이 더 축 쳐져 잠시 쉬는데 딸이 들어왔다. 엄마에게 종이꽃도 생화도 건네주지 않고 돌아온 나는 딸로부터 종이꽃을 받고 기운을 회복했다. 딸로서 엄마로서 2024년 어버이날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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