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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10. 2024

생일날 미역국은 언제까지 끓일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5

남편의 생일 미역국을 끓였다. 안 먹어도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생일인데 안 끓이고 그냥 지나가기도 마음이 불편해 미역을 물에 불렸다. 


엄마는 생일날이면 잊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 상에 올리셨다. 평상시에도 먹는 국이지만,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나만을 위한 특별한 국이라는 생각에 더 맛있었다.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뽀얀 미역국은 마치 온돌방 아랫목에 배를 데고 누워 있는 것처럼 속을 뜨끈뜨끈하게 만드는 국 중의 국이었다. 반찬 없을 때 시간 없을 때 밥 한 그릇 말아 후루룩 먹어도 든든한 패스트푸드였다. 엄마의 미역국을 먹고 자란 내가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다른 건 못해도 미역국은 끓인다. 문제는 슬프게도 오랜 시간 눈으로 입으로 먹어봤어도 손으로는 그 맛을 흉내 내지 못한다. 제일 쉬울 것 같은 미역국이 실상은 국 중에 맛있게 만들기 제일 어렵다. 미역과 고기(조개, 가자미, 북어, 전복을 넣고도 끓인다)를 끓이다 간을 맞추면 된다. 보통 심심한 미역국이 되어 한 끼만 올리면 식구들이 외면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시댁에서 주로 등장한 국도 미역국이었다. 국에 든 양지가 미역보다 많아 볼 때마다 놀라웠다. 맛이 없어 고기라도 많이 넣는다는 시어머니 레시피는 솔직히 맛은 없었다. 집에서도 할머니집에서도 미역국은 먹었지만, 입맛을 돋우는 즐거운 맛이 아니었는지 아이들이 미역국을 잘 안 먹게 되었다. 생일이든, 평상 시든, 미역국은 이제 거의 찾지 않는다. 차라리 비비고 미역국이 낫다고 할 정도로 집에서 만드는 미역국은 존재감이 없어 건강식으로 혼자 먹는다. 


미역국을 전문점으로 파는 식당이 있다. 집에서 흔히 먹는 국인데 누가 사 먹을까 싶었지만,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흘끗 내부를 쳐다보면 손님들이 가득했다. 친구가 원해서 가본 적이 있다. 진한 국물에 약간(?) 조미료 맛이 강한 미역국이라 입맛을 자극했다. 가끔 사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가격이 사악해서 미역국을 식당에서 사 먹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하고, 맛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서 끓이는 미역국이 점점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통계라는 정량적 수치로 알 수 있을까?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얘들이 자라서 과연 생일날 미역국을 직접 끓여 먹을까? 우리 세대가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하나씩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처럼, 생일이면 떠올랐던 미역국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까 싶다. 생일과 엄마를 하나로 묶어주던 미역국의 추억을 내 딸에게는 전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또한 몇 살까지 생일날 미역국을 손수 끓일는지. 미역국은 사라지고, 케이크만 남을지도. 



심심한 황태미역국을 먹고 달달한 고구마케이크로 생일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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