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May 13. 2024

스승의 날 선물을 준비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7

운동친구들과 만든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곧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건 어떨까?"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의견 주세요."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을 위해, 학원 선생님을 위해,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긴 적이 없다. 스승의 날만 되면 교탁 위에 선물과 꽃을 쌓아두던 풍경도,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 매점에서 산 음료수를 교탁 위에 올려놨던 내 학창 시절 기억 속의 풍경도 요새는 찾아볼 수 없다. 금물이다.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기념행사만 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로 정착된 지 오래다. 선물을 고민하느라 잠 못 드는 밤이 사라졌으니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다.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하니. 음료수 한병이라도, 꽃 한 송이도 마음 편하게 전하고 싶을 때 그렇게 할 수 없어 인정이 메말라버린 세상에 살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잊고 산다. 그렇다고 학원선생님을 챙기지도 않는다. 학교에 비해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거부하니 스승의 날은 매년 조용히 지나간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석가탄신일과 겹쳐 더더욱 존재 감 없이 지나갈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 선생님이 아닌 내가 다니는 운동수업 선생님을 위한 스승의 날 선물 준비를 하자고 단톡방이 시끌벅쩍했다. 금액과 선물 투표를 시작으로, 꽃다발을 할지 화관을 준비할지, 케이크를 할지 떡케이크를 준비할지 등등. 쉼 없이 올라오는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지며 동시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불쑥 올라왔다. 그렇게 하루이틀 대화를 이어가야 할 만큼 중요한 이슈인가! 전체가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몇몇이 준비하는 거면 그냥 조용히 감사를 전하면 안 되는 건가?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난 그만큼이 아니라 이런 불경한 마음이 드는 건가? 작년에는 선배 회원들이 케이크와 꽃을 전달해서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다. 그땐 운동한 지 한 달이 갓 지난 터라 신규회원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준비했었던 모양이다. 올해는 달랐다. 운동한 지 1년이 지났으니 참여해야 했다. 차라리 전체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소액을 걷어 다 같이 하면 내 반감도 없었을 것 같다. 다 같이 운동을 하지만, 내부적으로 알력다툼인지하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신구 회원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그 중심에는 선생님과 특별한 친분을 과시하는 반장처럼 나서지만, 반장은 아닌, 위치가 애매한 사람이 있었다. 하필 그 사람이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과 가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을 각별히 챙기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 사람이 주도하는 선물을 준비하게 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저 운동만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운동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순진했다. 동네 주부들이 모여 댄스든 근력운동이든 운동을 하는 곳에서는 보통 강사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게 관례라고 했다. 심지어 김치도 담가주고, 매번 식사도 대접하고, 선물도 챙기고 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직장은 아니지만, 상사를 모시는 것처럼 강사를 모시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다 보니 당황스러웠다. 몸을 챙기러 운동을 나간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혼자 왔다가 조용히 운동하고 집에 가는 것보다는 같은 공간에서 같이 땀을 흘리고 서로를 응원하는 맛이 달콤했다. 그 맛이 지나쳐 쓴맛이 느껴지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요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내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 같다. 이런 곳에서조차 인간관계에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튀는 행동을 피하는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대의견을 내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부담되는 돈을 내고, 존재감 없이 선물을 준비하는데 동참했다. 이번까지만 눈치를 챙기고 용기 내서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시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승의 날, 자발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40이 넘어서도 휘둘리다니... 불편했다. 










작가의 이전글 소비만 하는 내가 싫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