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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04. 2024

일거삼득 효과를 얻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51

관광 통역 안내사 교육을 받는 지인을 따라 봉은사 나들이를 다녀왔다. 삼성역 코엑스몰만 다녀봤지 반대쪽 봉은사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도심 한복판, 그것도 빌딩숲에 둘러싸인 절, 천년고찰이라는 그곳이 내심 궁금했다. 산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사찰과 달리 일주문부터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해 여기저기 기념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눈에 띄니 영락없이 관광지처럼 보였다. 





진여문(일주문)을 통과하니 고운 오색 빛깔 실로 직조한 카펫 아래로 지나가는 듯한 황홀한 연등행렬에 압도되었다. 6월의 따사로운 햇살에 비친 수천 개의 소원을 매단 연등이 만든 그림자조차도 작품처럼 느껴졌다. 





흥분도 잠시, 절을 둘러보면서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층빌딩이 가득한 복잡하고 바쁜 길 건너 세상과는 딴판인, 이곳은 꽃과 나무가 가득한 도심 속의 휴식과 쉼을 즐길 수 있는 사색의 공원이었다. 혼자 와서 조용히 절을 둘러보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도심 쉼터였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엄마는 동네 절에 다니셨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연등에 가족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소원을 빌고 공양간에서 비빔밥과 절편을 먹곤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쌓여 어느덧 나는 어떤 절이든 거리낌 없이 발을 들여놓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잊지 않고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한다. 마침 아빠 기일이 다가온다. 이번에도 지나칠 수 없었다. 오히려 이곳을 찾아온 덕분에 세상을 떠난 아빠를 위해, 홀로 애쓰며 사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잠시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마음을 채웠으니 배를 채우기 위해 봉은사에서 운영하는 서래원이라는 공양간에 갔다. 강남 국수 맛집으로 유명하다는데, 강남 한복판에서는 볼 수 없는 가격이 맛보다 더 반가웠다.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가 주력 메뉴인 듯했다. 오랜만에 부담 없는 점심값을 지불하며 지인은 6천 원에 비빔국수, 난 8천 원에 메밀국수를 배불리 먹었다. 




이제 가끔씩 삼성역에서 내려 봉은사에 올 것 같다. 대신 조건이 있다. 오늘처럼 평일 오전 한적한 때, 마음이 힘들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때, 아빠 기일이 다가올 때 찾아올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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