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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03. 2024

이 또한 나를 닮았구나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50

엄마를 닮아서 그래!

안 좋은 것만 닮은 거 같아!


어릴 적 아니 여태까지도 엄마를 닮아 혹은 아빠를 닮아 성격이 어떻고, 외모가 어떻다고 가끔 투정을 부린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애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장점만을 쏙쏙 뽑아 업그레이드된 자식이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그게 안 통했는지 커가면서 아이들의 이쁜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오는 불평 아닌 불평이 귓가에 자주 들린다. 그 순간 유전자의 힘, 그 보이지 않는 무적의 힘에 압도당한다. 원하는 대로 입맛대로 고칠 수도 없다. 


어릴 적 빨간색 에나멜 구두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신발가게에 진열된 구두를 쳐다보고 엄마한테 용기 내어 사고 싶다고 말했지만 9살짜리 행복은 나를 비켜갔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그림의 떡 같은 신발. 발이 또래보다 많이 컸다. 어쩌다 운 좋게 사이즈가 있는 신발도 내가 신으면 어린 눈에도 친구들것만큼 안 예뻤다. 어른 신발을 신고 있는 듯한 어색함... 엄마의 큰 발 유전자가 나에게로 전해졌다. 외할머니의 유전자가 엄마에게 전해져 한 달이 멀다 하고 고무신이 찢어져 밥먹듯이 샀다고 엄마도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다. 성인 여자 발사이즈는 240mm가 평균인 듯하다. 보통 판매대에 디스플레이되어 있고, 240을 전후로 발이 작다 크다를 이야기한다. 키 170cm에 255-260mm인 내 발은 신발의 한을 품고 40년 넘게 살고 있다.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맞는 신발을 쇼핑하기에 적당하다. 발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한 발로 잘 서 있고 걸어 다닐 수 있으면 발의 존재 이유는 설명되지만 참 아쉽다. 발이 크다는 신체적 특징 하나만으로 어쩌면 사회가 정한 규격과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드러내 보이는 듯해서 불편했다. 남들처럼 예쁜 구두를 신고 자랑하고 싶었지 남들과 달라 눈에 띄는 게 싫어 혹여 누가 내 신발을 볼까 어떡해서든지 숨기고 싶었다. 


그런 내 유전자가 아들에게 전해졌다. 아들의 발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6개월을 주기로 쑥쑥 커갔다. 14살에 벌써 280mm라니. 그나마 딸이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쉰다. 아직은 발이 다 큰 게 아니라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차라리 아들 발이 큰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니 신발에 대한 미련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현관에 놓인 신발을 보고 놀랐다. 발이 큰 것뿐만 아니라 걸음걸이가 닮아서인지 신발 상태가 비슷했다. 아들뿐만 아니라 딸까지도 나와 닮은 꼴 같았다. 남편의 운동화는 멀쩡했다. 우리 셋은 운동화 한 켤레를 닳을 때까지 주야장천 신는다. 신발을 최소한 두 켤레 놓고 번갈아 가면서 신어야 좋단 말은 들었지만, 잘 안된다. 약속 있는 날을 제외하면 산책하고,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 때문에 편한 운동화 한 켤레를 애용한다. 걸음걸이가 이상한지 마찰력 때문에 신발 뒤축이 다 까졌다. 작년에 한번 수선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들의 신발도 비슷한 상태에 특히 딸의 신발은 심각했다. 벗겨져 너덜너덜했다. 절약도 좋지만 신발 한 켤레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해 새 신발을 사주고 싶어 주말에 쇼핑을 다녀왔다. 


뒤축이 까진 우리셋의 검은색 운동화


새 신발을 신고 가볍게 즐겁게 여름을 보내자고 셋이 약속했다. 옆에서 따라만 다닌 남편은 웃었다.


"셋 다 잘 좀 걸어 다녀. 걸음걸이가 이상하니 신발이 망가졌지. 내가 가르쳐줄게."


우리도 같이 웃었다.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나 배워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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