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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10. 2024

충동적인 갈비찜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56

입이 짧은 딸이 요새 통 입맛이 없어 보였다. 핸드폰에 낮기온 31도라고 적힌 걸 눈으로 확인하며 후텁지근한 오후를 보냈다. 이제 시작된 여름에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학원가는 아이에게 물었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 관심?"

"아니, 관심 말고 진짜 먹는 걸로?"

"진심으로 엄마 관심!"

"알았어. 관심으로 준비할게."


그렇게 장난반 진담반으로 대화를 마치고 아이는 셔틀을 타러 가고 난 마트로 향했다. 더우니 후딱 고추장 불고기라도 해서 저녁을 먹고 치우겠다고 마음먹고는 삼겹살과 목심을 샀다. 정육코너 한가운데서 판매 직원들은 호주산 소고기와 한우가 둘 다 세일이라고 외치며 지나치는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슬쩍 보니 튼실해 보이는 호주산 찜갈비팩이 눈에 들어왔다. 

'갈비찜해서 주면 좋아하겠지!'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을 서로 이야기할 때면, 주저 없이 딸은 갈비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딸을 위한 갈비찜이 저녁메뉴가 되었다. 


먹기는 쉽지만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갈비찜을 명절도 생일도 아닌 평범한 오늘같이 더운 날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열치열도 아니고, 나란 인간이 얼마나 충동적이며 계획성 없는가를 재확인했다. 음식에 자신이 없는 주부라서 네이버에서 레시피를 찾아 '제발 맛있어라'라고 주문까지 외우며 차츰 갈비찜에 빠져들어갔다. 


핏물제거 후 초벌로 끓이기



핏물을 제거하고, 끓는 물에 갈비를 삶았다. 양념장을 만들어 초벌로 끓인 갈비와 함께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쭈욱 거의 2시간이 흘러갔다. 질기지 않게 푹 끓이면서 중간중간 거품도 걷어내면서 뒤적거렸다. 더운 불 앞에서 불멍도 아니고, 하루 중 가장 몰입한 시간이었다. 기다림과 인내, 사랑으로 맛있기를 거창하게 바라는 똥손 엄마의 갈비찜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양념장과 같이 끓이다가 야채를 넣고 마무리


다행히, 다행히도, 보기와는 다르게 수수하지만 달달한 갈비찜이 탄생했다. 하원한 딸에게 예상치 못한 기쁨이 되었다. 자신이 학원 간 사이 엄마는 2시간 넘게 갈비찜을 만들었다고 내 노고를 짧게나마 이야기하니 놀라워했다. 갈비값, 인덕션 전기료, 엄마 수고비까지 쳐서 10만 원짜리 갈비찜이라고 나름 가격까지 매겨줬다. 

더운 날의 갈비찜이 몸보신이 되었기를, 애쓴 나도 달달한 고기를 오랜만에 함께 먹었다. 단맛이 참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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