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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18. 2024

내 목소리가 커졌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1

타인에게 "~해라, 마라, 사라" 등등의 말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내가 좋은 의도로 말했어도 상대방이 느끼는 결과값이 다를 것이 두려웠다. 주변에는 자신 있게 "나처럼 해봐, "라고 말하며 나를 따르라라는 식으로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내 한 몸 건사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렀다. 


그런 내가 변했다. 특히 건강과 인생에 대해서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였다.


삼 남매 중의 막내인 남동생의 와이프, 즉 올케와 며칠 전 엄마 핸드폰 요금문제로 통화를 한 뒤 여름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낚시가 취미인 남동생이 함께 보낼 휴가보다 낚시 계획을 우선 고려해서 서운하다는 말을 꺼냈다. 늦게 퇴근해서 저녁을 먹을 때도 서로 대화가 없는 날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둘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작년 추석 연휴에 엄마를 모시고 방문한 동생네 집에서 올케의 눈물을 처음 봤다. 집안 곳곳에 장식된 코바늘 뜨개로 만든 가방, 모자, 테이블보는 감탄의 대상이기보다 홀로 보낸 시간의 흔적 같아 마음이 짠했다. 


나와 같은 해에 결혼한 동생부부는 자녀가 없다. 아이를 좀 늦게 가져도 되겠지 하다가 결혼 3년 차에 올케가 대장암 수술을 했다. 예쁜데 밝고 상냥하기까지 해서 누구보다 아빠가 좋아하셨다.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함께 병문안 갔을 때, 무통 주사조차도 맞지 못해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사람도 못 알아보던 올케를 봤다. 다행히 수술만으로 암은 제거되었지만 이후 임신을 장담할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우리 집 아이들을 볼 때마다 촉촉해지는 눈시울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올케는 아이를 좋아한다. 남동생도 아이를 좋아해서 잘 데리고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둘에게는 아이를 키우며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행복이 찾아가지 않았다. 


처음 올케의 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떡해?!"라고 입 밖으로 나온 말에는 발병의 안타까움과 함께 나도 모르게 남동생이 떠올랐다. 이후 내 발병 소식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울면서 남편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곧 이해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고, 내 식구를 먼저 챙기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할 수 없기에.


내가 아프고 나서야 올케가 잘 보였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의 파장이 나를 흔들었다. 경험은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는 힘을 준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냥 동생의 아팠던 와이프로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올케를 동생의 짝꿍으로 보는 시선보다 암을 경험한 여자로 보고 이야기를 하는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올케가, 무자식인 올케가 동생만 바라보고 살지 않길 바랐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올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잔소리처럼 한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의지하고 기대하지 말라고. 부부사이는 당사자들끼리만 알지만 감히 입을 연다. 목소리에 또 힘이 들어갔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갖고 사는 올케부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부부도 매일 할 말이 많은 건 아니야. 애들 이야기를 주로 하지. 

 식구들이 같이 있어도 각자 시간을 보내고 셋은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 때로는 같이 있어도 외로워.

 동생이 낚시 갈 계획을 먼저 짠다면, 너도 너만을 위한 여행 계획을 짜봐. 근처 당일 여행도 좋고. 

 방학 때 우리 집에도 한번 놀러 오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따로도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

 살아봐서 알지만, 하루가, 6개월이, 일 년이 금방금방 지나가잖아. 

 혼자 먹는다고 대충 먹지 말고 잘 챙겨 먹고. 또 아프면 안 되니까. 건강 챙기자, 우리!"


약간의 울먹임이 핸드폰에 전해지는 듯, 올케는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타인의 속마음을 100프로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올케가 편히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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