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의 인생 깨달음

아침 단상으로 글 쓰기 습관 키우기 2

by 태화강고래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경기도 초등학생 치과 주치의 사업의 대상자로서 치과에 가야 했다. 지난 5월부터 학교알리미로 안내를 받았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태 치과를 방문하지 못했다. 공짜로 구강관리를 해 준다고 해도 선뜻 못 갔다. 미뤄뒀던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달래서 6시 예약에 맞춰 치과로 들어갔다. 간단히 10분 정도 검진만 할 것으로 생각하고 밥도 안 먹이고 갔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예전에 메운 실란트가 탈락돼서 다시 메우고 불소도포까지 마치면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치과 검진을 가면 충치예방을 위해 실란트와 불소도포를 하고 왔는데, 이번이 해야 될 타임이 될 줄은 몰랐다. 바깥은 이미 어둑한 평일 6시가 넘은 시각에 피곤하고, 지치고, 배고픈 아이를 의자에 앉혀 실란트 시술과 불소도포를 받게 한 내 판단이 옳았는지 그때부터 미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아이 입장에서 짜증 나고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기다리는 내내 좌불안석. 드디어 7시가 조금 넘어 아이가 나왔다. 지치고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진료실 밖으로 나오니 내 마음은 더욱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몰랐다. 불소도포를 했으니 한 시간 뒤에 침을 삼키고, 물과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라는 주의사항도 들었다. 침을 뱉을 종이컵과 티슈를 손에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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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음식을 먹여야 할 것 같아 죽을 포장 해서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종이컵에 침을 뱉고 입을 닦기를 반복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먼저 죽을 먹는 오빠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핸드폰으로 알람까지 켜 놓고 침 삼킬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10분, 5분, 1분, 땡! 알람이 울리자 딸아이는 외쳤다.


"1시간 지났어요!

이제 침 삼켜도 되죠?

물도 마시고, 죽도 먹어도 되죠?"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침을 뱉고 입을 헹구고 상기된 얼굴로 식탁으로 돌아왔다. 물을 마시고, 따끈한 전복죽을 어느 때보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침을 삼킬 수 있는 것도 소중하네요.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물 마시고, 밥 먹을 수 있는 것도요."

당연히 하던 것을 못 하니까 죽을 것처럼 힘들었어요. 진짜 못하는 게 힘들었어요."


처음 불소도포를 한 것은 아닌데, 유독 오늘 딸아이의 깨달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듯해서 아이의 얼굴을 여러 번 쳐다봤다. 별거 아닌 것들로 인식하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지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암을 만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다음날 눈을 떠 가족들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한지 나도 뒤늦게 깨달았으니까. 관성에 젖어 가끔씩 잊고 살아갈 때가 있지만, 오늘처럼 옆에서 나에게 일상의 감사함을 깨우쳐주는 이벤트와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구든 곁에 있어 다행이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오늘 저녁 딸도 나도 정신은 말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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