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우리 곁에

아침 단상으로 글 쓰기 습관 3

by 태화강고래

집 앞 아파트 상가를 지날 때마다 본다. 경쟁이라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주인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입간판을. 한 달 전까지 3층 소아과와 1층 약국. 그리고 바로 옆 상가의 이비인후과가 평화롭게 잘(?) 지내는듯했다. 약국의 기본적인 존재감을 나타내는 간판만 보였다. 그러다가 세탁소가 이사 가고 약국이 들어왔다. 기존 약국에서 열 걸음도 안 되는 곳에 약국을 열다니... 인테리어를 마치고 ㅇㅇ 약국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과연 운영이 될까? 괜히 내가 걱정이 되었다. 소비자입장이 아니라 공급자입장에서. 얼마 전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던 약국도 문을 닫고 나간 지 얼마 안 된 터였다.


그렇게 두 약국의 공존이 시작되었다. 후발주자의 노력이 내 눈에 보였다.


1. 평일 9시까지 + 주말 운영 = 메시지는 '열린 약국'입니다.

8시가 넘은 시간에 배가 아프다는 아들을 위해 집밖으로 나와 늦게까지 문을 여는 약국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갓 오픈한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불을 밝히고 정리 중이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갔다.

"아직 문이 열려 있어 들어왔는데, 약 좀 살 수 있을까요?"

"그럼요!"


밝은 목소리와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맞아준 약사는 분위기로 봐서 새내기 약사인 듯했다.

증상을 차근차근 묻고 약을 건네주었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낀 나는 고마운 마음에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늦게까지 문 여는 곳이 없는데 덕분에 약을 잘 샀어요."

"오픈한 지 안 돼서 늦게까지 여니 필요하실 때 또 들려주세요."


그렇게 나는 약국을 가봤다. 그 후로 저녁 산책하면서 지나칠 때면 9시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약국의 문은 열려있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2. 홍보 = 메시지는 '저 여기 새로 왔습니다'

간판은 간판대로 눈에 띄는 색깔로 만들고, 개업했음을 알리는 배너를 추가로 인도 쪽에 세워두기 시작했다.


며칠 뒤 기존 약국의 배너가 약국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도 가운데까지 나와 버티고 서서 시각적으로 거슬릴 정도였다. 약국과 함께 소아과도 일심동체가 되어, 친절하게 주차안내까지 포함한 새로운 배너를 입구에 하나 더 세웠다.


애들이 소아과에 자주 가는 시기가 지나서 소아과 쪽 약국에 자주 가지 않는다. 이비인후과도 소아과가 붐빌 때 어쩌다가는 정도이니 신 약국도 자주 갈 일이 없다. 약국이 두 개 있든 한 개 있든 내게 엄청난 영향은 없다. 다만 약국 간 경쟁이 생기니 서비스제공 측면에서 좋아졌다. 늦은 저녁에도 주말에도 근처 쇼핑몰에 입점한 약국까지 가지 않아 편리하다. 기존 약국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친절해진 느낌이다. 인간세상을 포함해 생명이 숨 쉬는 어디서나 있기 마련인 경쟁이라는 놈 덕분이다. 선한 경쟁이 있어야 개인의 발전이 있고 그 발전을 바탕으로 사회의 발전이 있으니까 필요악인 동시에 인간 본능인 그것. 주부는 집안에 경쟁상대가 없으니 도태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단순해 보이는 주부의 삶도 살아보니 경쟁무풍지대는 아닌 거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측면에서든 경쟁을 피할 수 없어 하루하루 비교하며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두 약국의 약사에게 물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들의 속마음은 모른다. 양쪽이 어떤 타협을 했는지, 그저 눈치껏 영업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약국들이 줄지어 영업하는 대형병원 앞 약국들과 달리, 달랑 둘이 서서 경쟁을 하니 내 눈에 더 도드라지게 보였던 거 같다. 경쟁의 당사자가 아닌 나는 가끔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을 한다. '병원 하나씩 맡아서 약국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라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꿈꾼다. 그게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약국의 매출이 경쟁의 결과를 증명해 보이는 세상에서 다 내려놓고 영업하기란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한다.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경쟁심을 쏟아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사는 게,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잘 사는 법"이다. 지나친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 강약을 조절하며 건강한 경쟁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0살의 인생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