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잘 살아보려고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산책을 시작했다. 유방암진단을 받고 수술 전 어디라도 가고 싶어 집 근처 태화강국가정원에 바람 쐬러 갔다. 넓게 펼쳐진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잠시 사라졌다. 아들과 남편은 강 둔치에 있는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나는 딸과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울산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서울의 한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1960년대 울산이 중공업단지로 조성되면서 태화강은 환경보다 산업발전을 우선시한 경제정책의 희생량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하위 수준인 5등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수질로 물고기는 폐사하고, 시민들은 산책조차 할 수 없었다. 2000년대 수질개선사업을 시작으로, 2004년 12월 태화강중류 십리대밭 인근에 대나무숲, 습지, 조류서식지, 수로 등을 그대로 살려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2013년 태화강 정원으로 개장했고, 2019년 7월 12일 우리나라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개최를 위해 조성되어 폐막후 2015년 7월에 국내 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원 조성의 이유와 목적이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에 국가정원 1호와 2호의 규모와 분위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공미와 자연미의 대비.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겠지만, 난 수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래서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태화강국가정원을 내 삶의 동반자로 주저 없이 선택했다.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산책을 했다. 관찰하고, 감탄하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2019년 암 치료를 위해 병원 다닐 때를 제외하고,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 시작으로 전 세계가 멈춰서 공포에 떨면서 확진자 수 집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집안에만 머무르던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갔다.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운동화 신고서. 나와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혼자 산책하는 사람을 여기 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태화강국가정원을 산책하면서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풀, 꽃과 나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의 속도로 생겨나고, 번성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나무였다. 십리대숲이라 불리는 태화강을 따라 십리(약 4km)에 걸쳐 조성된 대나무숲이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대나무만 보다가 어린 죽순을 보는 게 무척 신기했다. 죽순은 땅속줄기마디에서 자라는 어린순이다. 땅속에서 4-5년의 성장과정을 거쳐 우리 눈에 보이는 대나무로 매일 쑥쑥 자라 빨리 자라는 종은 하루에 90센티미터까지도 폭풍성장을 한다. 4-5년간의 땅속 성장을 한다니! 대나무의 성장에는 기초를 튼튼하게 닦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 뒤에야 쉽게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 대나무로 자랄 수 있다. 대나무가 어우러져 대나무숲을 이룬 것에만 감탄하기에 바빴던 나에게 죽순 관찰 경험은, 단시간의 노력으로 보이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고 포기하기에 급급했던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노력, 시간, 성장, 삶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죽순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 따르면, "한 장소에 오랫동안 죽치고 있는 여자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인데, 죽순에서 유래한 뜻이 아니라고 한다. "죽치다"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해도 사전적 정의는 "움직이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한 곳에만 붙박여 있다"이다. 죽순이는 몰라도, "죽치고 있다"는 말은 대나무 죽순의 생태적 특성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해석해 본다. 유래가 어떻든지 나는 죽순의 생명력과 보이지 않는 노력을 높이 산다.
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도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좋아지고 있었다. 수술과 치료 후 여성호르몬차단제를 복용하면서 몸이 정말 힘들었다. 바닥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려면 80대 노인처럼 끙끙거리면서 도움을 받아야 했고, 양반다리는 불가했고, 자고 일어나면 굳어진 손가락을 펴고 10여분 간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병원나이는 42세였지만, 신체나이는 꼬부랑 할머니의 몸 같았다. 삶의 질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럴수록 더욱 산책에 신경 썼다. 신기하게도 한발 한발 걸으면서 조금씩 몸이 가벼워졌다. 변화를 느꼈다. 외로움도 고립감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혼자 산책하는 시간을 감사하게 되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길로, 원하는 걸음속도로 맘 편히 산책할 수 있었다. 태화강국가정원은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준 엄마품 같은 곳이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곳에서 팍팍한 도시생활과 암 투병으로 무너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얻었다. 건강한 일상을 살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말없이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소중한 친구였다. 태화강국가정원은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