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낯선 곳에서 느낀 외로움

by 태화강고래

광역시...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에 이은 세 번째 광역시이자 항구도시

정유, 비료, 자동차, 조선 관련 공장들로 가득한 우리나라 최대의 공업도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도시


중화학도시로 알려진 우리나라 동남쪽의 항구도시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수도권에서만 살던 내가, 출장지로도 가본 적 없는 울산에서 잘 살 수 있을지 설렘반 걱정반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2월 마지막 주에 가족과 함께 울산으로 이사 갔다. 4년을 기약하고 내려간 그곳에서의 첫날밤. 1박 2일 지방이사라 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숙소에서 하루 밤을 보내야 했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주문한 칼국수를 앞에 두고 나와 아이들은 동시에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에... 참던 눈물이 쏟아졌고, 지켜보던 남편은 어이없어했다. 추운 겨울밤, 울면서 먹은 그날의 칼국수 맛이 어땠는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그저 "눈물의 칼국수"를 먹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그렇게 우리 가족의 울산생활은 시작되었다.


남편은 회사자체가 이전했으니 경기도에서 울산이라는 장소의 이동만 있었을 뿐.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에 적응해야 했고,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집안 정리, 학원 등록, 동네 익히기 등 새로운 터전에서의 일상을 세팅하기에 바빴다. 그것도 잠시, 내 몸속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울산으로 내려오기 직전 동네 유방외과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고, 대학병원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이사를 왔다. 결과는 유방암이었다. 유 방 암 진단 후 울산생활은 달라졌다.


2019년 3월 8일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3월 말 유방암 수술, 4월 중순 난소암 수술, 6개월 항암치료, 6주간 방사선 치료까지 쉼 없이 암치료를 하고 나니 2019년 울산살이 첫해가 지나갔다. 정신없이 암 뒤치다꺼리하다 보니 1년이 지나갔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달랑 우리 가족 4명이 울산의 어느 아파트에서 1년을 조용히 살았던 것이다. 누군가를 사귀고 어울리는데 쓸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간신히 집과 병원만을 오갔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집 밖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결혼 전 유학시절, 나 홀로 미국에 살던 때와는 180도 달랐다. 그땐 젊었고, 건강했고,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경험하느라 바빴기에 혼자 있는 외로움도 고립감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울산은 달랐다. 내 몸이 달랐기에 마음도 달랐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덩달아 아팠다. 암치료 동안 약해진 몸과 마음을 돌봐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 친정식구도, 시댁식구도, 친구도, 그냥 아는 사람도 곁에 없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편히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전부였다. 서글픔과 외로움이 나를 짓누를 때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고, 울산에 사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답답했다.


하루하루 지나 치료의 끝이 보이자 서서히 외로움에도 익숙해졌다. 아니 적응했다. 우울모드로 살기엔 내 시간이 아까웠다. 1년을 그냥 보낸 거 같아 남은 3년이라도 잘 살아보고 싶었다. 암이라는 일생일대의 삶의 동반자를 맞이했으니 몸과 마음을 추슬러 어서 빨리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를 살아가겠다고.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 무엇보다 나만의 자리를 찾아가겠노라고. 울산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더 이상 "혼자라서 외로워"가 아닌 "혼자라서 가끔 외롭지만 좋아"로 바꾸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 누구나 어디서나 외로움은 느끼는 거니까. 나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감정이 아닐 테니까.

혼자=외롭다? 이 공식을 부정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울산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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