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바다는

항암의 고통을 견디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었습니다.

by 태화강고래

울산에서의 일상은 달라졌다. 주변환경은 물론이고, 나의 모습도 변했다. 이사 가기 일 년 전,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생활을 접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매주 토요일 오전 홍대 근처 번역아카데미를 다니며 번역가의 꿈을 키웠다. 마지막 수업을 앞둔 시점에서, "유방암이네요. 그래도 순한 암입니다"라는 의사의 진단 앞에서 공든 탑 같던 계획과 준비는 우르르 무너지며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선 몸부터 추슬러야 했기에 하던 일 멈추고 하루하루 별 탈 없이 지내는 게 계획에 없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말로 슬픔에 빠진 나를 위로했다. 랜터 윌슨 스미스 (Lanta Wilson Smith) 시의 한 구절에서 인용된 이 구절이 내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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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류시화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p. 28, 29)



울산생활에서 태화강국가정원이 내 집 마당 같은 산책장소였다면, 간절곶은 관광객의 설렘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지도상의 간절곶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일대에서 돌출한 곶인

간절곶은 동해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어 일출명소로 유명하다. 포항 영일만의 호미곶보다 1분 빨리, 강릉 정동진 보다 5분 빨리 해돋이가 시작된다.




2019년 5월 13일 첫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시작 전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항암치료받는 환자의 이미지가 나와 오버랩되면서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견뎌낼지 무서웠다. 네이버 환우카페도 들락거리면서 항암준비물을 챙겼다. 지나고 보니, 준비물은 닥쳐올 운명의 순간을 담담하게 마주하게 해 주는 혼자만의 의식, 마음의 준비운동 같은 것이었다. 첫 항암 후, 대표적인 부작용인 오심(매스꺼움, 울렁거림)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임신 초기, 이 증상을 참기 위해 탄산수를 마시고 껌을 씹으면서 버틴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항암 주사투약 후의 울렁거림과 메스꺼움은 입덧 증상과 비교할 수 없이 더 괴로웠다. 오심을 동반한 두통,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붓고 전신이 아팠다. 선배 환우들의 말처럼 머리카락은 1차 항암 후 어김없이 빠져 집안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샤워 후 하수구를 덮을 정도로 빠졌다. 내 머리숱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쉼 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 게 점점 벅찼다. '며칠 뒤에나 다 빠질까?'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내 두 발로 미용실을 찾아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 들어가 군입대를 앞둔 신병처럼 짧게 깎았다. 내 모습이 낯설기는 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저녁에 나를 본 아이들과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냥 내 모습을 받아들였다. 유치원생 딸은 엄마의 어떤 모습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가만히 안아주었다. 3주에 한 번씩, 총 8번의 항암 치료를 했다. 치료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몸도 적응했는지 항암 후 1주일은 괴로웠지만 2주 차부터는 살 만했다. 살 만하다 싶으면 가족과 함께 울산 이곳저곳을 다녔다. 기분전환을 마치고 컨디션이 회복될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음 차수 항암치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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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곷 풍경


해돋이로 유명한 간절곶을 찾았다. 4번째 항암 후에 처음으로 본 울산 바다였다.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탁 트인 이곳에서 답답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상쾌한 바다 바람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힐링 자체였다. 소망우체통 앞에서 간절한 소망을 빌었다.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내 인생 숙제인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싶다고. 암 치료가 끝나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오겠다고, 우체통에 마음으로 쓴 편지를 담았다. 울산 생활 4년 동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드넒은 바다의 크고 작은 움직임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바다를 생각했다. 한 때, 몰아치는 파도에 밀려 슬픔이 나를 흔들었지만, 그 파도도 이젠 지나가고 다시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했다. 가족과 함께 있음에 행복해했다. 그렇게 인생의 파도는 오고 가는 것임을 바다를 보며 배웠다.


인생의 "첫" 경험이 오래도록 특별하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기억되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과 함께 나를 위로해 준 울산 바다를 잊지 못할 것이다. 간절곶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울산에 살아서 참 행운이었다. 잘 버텨낸 내가 참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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