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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녕" 인가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0

by 태화강고래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엄마가 아프고 나서 새로운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병원이라는 낯선 시설에서 수많은 환자와 그의 가족, 간병사, 간호사와 병원 직원들까지,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두께로 마음의 벽을 쌓기도 허물기도 했다.


그녀는 한마디로 깐깐한 사감선생의 인상으로 나에게 비쳤다. 160센티정도 키에 군살 없이 딱 떨어지는 몸에 안경을 쓰고 사무적인 말투로 입원수속을 안내했다. 체계적으로 정돈된 병원과 철저히 규정을 지키는 모습에서 안심과 걱정이 동시에 나에게 찾아왔다. 특별하게 마주칠 일 없는 병원실장이었지만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살뜰하게 살핀다는 훈훈한 말은 자주 들려왔다. 매주 한 번씩 엄마의 병원 적응을 위해 찾아가 인사를 했다. "엄마를 잘 부탁드려요"라고 자주 찾아오는 나를 거절하기가 미안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내 진심을 알아줬다.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보였던 사람이었지만 점차 내게 마음을 열었다. 그 후 점차 다가가다 결국 의지하게 되었다.


2019년, 울산에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다시 한번 엄마를 부탁하고 병원을 나섰다. 난 울산에서 암환자가 되었고 다음 해인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공포와 슬픔으로 휩싸였다. 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에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이 사망하고 그에 따라 문 닫는 병원이 속출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전쟁터 같은 병원에서 하루하루 지내는 엄마에게 고작 미안하다는 말만 할 수 있었다. 안부를 묻고 무사하기만을 바랬다. 1주일에 한 번씩 엄마의 간식거리를 병원에 배달시키면서 실장에게도 소소한 간식을 함께 보냈다. 볼 수 없는 엄마를 잘 지켜달라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 전할 수 있는 것은 형체가 보이는 과일뿐이었다. 하필 코로나 시기에 낙상으로 응급실에 다녀오고 외부 병원을 다녀야 했을 때도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할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서로 알고 지내온 시간만큼, 내 마음을 알아준 덕분에 내가 손을 내밀 때마다 꽉 잡아주었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까탈스러운 엄마의 불평을 들을 때도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녀를 찾아가 일을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도 울산에서 경기도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 쪽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살뜰히 보살피던 친절했던 간호사들이 제일 먼저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손발톱을 깎아주며 엄마를 위로했던 어여쁜 간호사들이 가고 한동안 엄마는 그 빈자리를 그리워했다. 병원의 재정상태가 안 좋다는 여러 신호를 나에게도 전했다.


코로나 이후 병원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직간접적으로 들었지만 그래도 버텼으면, 버티겠지라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에는 병원실장을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잘 운영해 주시길 속으로 빌었다. 주말에 병원을 찾은 내게 엄마는 병원 주인이 바뀌었다는, 끝까지 듣고 싶지 않던 소식을 전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엄마와 환자들의 앞에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절이 싫어 떠날 수 있는 중이 아니라 절의 주인이 바뀌었기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중의 입장이라 서글프다. 가족같이 편안하게 익숙한 사람은 다들 떠났어도 공간만큼은 익숙한데, 그나마 남은 간병사만 믿고 하루하루 보내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믿고 지냈던 곳의 주인이 바뀌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엄마를 달래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엄마의 다음 거처를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참 태평하게 엄마를 맡겨뒀구나라는 자책감이 함께 왔다.


집으로 오기 전 병원비를 묻기 위해 원무과에 들렀다가 실장을 봤다. 마지막까지 업무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오랜 친구처럼, 자매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둘이 손을 맞잡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엄마를 믿고 맡겼던 거목 같은 존재가 그날따라 너무 왜소해 보였다. 다시 보니 그랬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마른 장작처럼 곧 넘어질 것 같았다.


"다른 보호자들은 몰라도 따님은 마음에 걸려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남과 헤어짐, 끝없이 반복되지만 어떤 인연만큼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자만한 생각이 든다. 병원과 환자라는 특수관계에서는 공급자와 소비자로 서비스가 종료되면 제 발로 걸어 나오면 그만인데 이곳은 숱하게 옮긴 병원과 달랐다. 어떤 변화가 생길지 걱정할 엄마가 내 마음을 다시 아프게 흔든다. 끝나지 않는 병원신세에 자식으로서 할 말이 없다. 이제 내 손을 잡아주던 손마저 떠나가니 허전함과 아쉬움에 새해부터 마음이 무겁다. 엄마는 어떨지 그 마음이 짐작되니 떠나는 실장을 보는 마음이 더 안타깝다.


청춘시절, 노래방 마지막 곡으로 꼭 불러야 했던 노래가 생각났다.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고 살다 보니 아쉬움이 가득한 헤어짐은 어느새 인생 터널에 남긴 자국이 되었다. 이번 인연은 엄마를 둘러싼 만남이었기에 더욱 특별해서 오랫동안 가슴속에 고이 접어둘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지만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겠지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봐요
어느 차가웁던 겨울날 작은 방에 모여
부르던 그 노랜 이젠
기억 속에 묻힌 작은 노래 됐지만
우리들 맘엔 영원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엄마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1996년 015B의 "이젠 안녕"이라는 노래가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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