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1
산책 후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 케이크상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마침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 아들을 향해 물었다.
"웬 케이크야?"
"제가 만들었어요."
"네가? 정말로?"
"네."
믿기지 않아 겉옷도 벗지 않고 케이크상자부터 살펴봤다. 웃음부터 나왔다. 어설픈 생크림케이크가 보였다. 덩치 큰 아들이 터벅터벅 집까지 앙증맞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다. 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지 그 모습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얼른 상자를 열어봤다. 이왕 하는 거 골고루 펴서 보기 좋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그저 내 바람이었다. 다음 주 방학을 앞두고 케이크 만드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무려 두 시간을 잡아먹으면서까지 생크림을 직접 만들어 시트에 펴 바르고 딸기, 쿠키, 샤인머스캣을 토핑으로 올려 완성했다고. 집까지 20여분 걸어오다 보니 이리저리 치여 안 그래도 어설픈 케이크가 상자 모서리에 부딪혀 약간 더 망가져 보였다.
브런치 작가님의 따님들이 공들여 만든 케이크 사진이 기억났다. 감동적인 글로 마무리까지. 그러나 우리 집 아들의 못생긴 케이크는 존재자체만으로 나른한 오후에 뜻밖의 웃음을 선사했다. 정성 들인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을 테지만 그런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자의로는 안 할 텐데 타의로라도 만들어와서 내 앞에 떡하니 뒀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했다. 예쁜 케이크는 많이 먹어봤으니 귀하디 귀한 못난 수제 케이크를 만난 흥겨운 시간이었다. 과연 케이크를 만들어 집에 들고 올 날이 또 있을까?
딸 케이크가 생각났다. 요리에 관심 있는 딸아이는 방과 후 수업에서 만든 케이크를 애지중지 들고 왔었다. 정성을 다해 생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느라 팔이 아팠고 딸기와 샤인머스캣으로 예쁘게 장식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케이크를 잘라 함께 시식했다. 직접 만든 케이크라는 자부심에 이전에 먹어본 다른 케이크보다 부드럽다고 음미하며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아들은 케이크에 관심이 없었다. 본인이 만들어왔지만, 시큰둥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에게 보여줬더니 "심하게 똥손이네!"라고 쳐다만 봤다. 관심 없는 아들과 딸 대신 혼자 슬쩍 맛을 보니 당연히 보통 케이크맛이었다. 맛보다는 비주얼이 인상적인 케이크였다. 못생겼지만 못생겼다고 타박하기에 케이크가 억울해할 것 같았다. 웃음을 준 걸로 할 일을 다했다고 칭찬했다.
딸아이에 이어 아들이 만든 케이크를 맛보다니, 복 많은 엄마이다. 한번 만들어봐야지 생각만 했지 여태까지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어본 적 없는 엄마이다. 케이크 만들기 키트에, 만드는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블로그가 존재하나 선뜻 나서지 못한 나를 되돌아보면서 아들의 불평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사서 맛있게 먹는 것을 선호하니 말이다. 자식들이 만들어봤으니 조만간 만들어보긴 해야겠다. 케이크를 만들 때 어떤 마음이 그 속에 담기는지 한 번쯤은 느껴보고 나서야 아들의 케이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