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4
"너무 길기만 하면 엉켜. 다듬으면서 길어야지 예뻐. 끝만 자르러 갈까?"
백 번 천 번 말해도 헛수고였다. 내 입만 아팠다.
"긴 머리카락이 제 생명이에요. 긴 머리가 잘 어울려서 자르면 안 돼요!"
라푼젤처럼 성밖으로 탈출하는데 쓸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의 마법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모발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유교걸의 다짐을 뼛속깊이 새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다듬고 길라는 것뿐인데, 그리 어렵나 싶었다. 엄마말을 "네"하고 바로 따르면 안 된다는 법조항이라도 있는지 답답했다. 10대 사춘기 문턱에 들어선 딸은 긴 생머리 여자 아이돌처럼 댄스 할 때는 찰랑거리고 평소에는 청순해 보이는 스타일을 고수하길 원했다. 외모와 그 사람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신의 한 수 같은 머리카락의 힘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품을 긴 생머리의 로망, 나도 한때 원했지만 어울리지 않아 스스로 포기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 소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니까 도와주겠다는데, 내 마음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매번 무시당했다.
"자를까? 조금만 자르러 가요."
그렇게 1년 만에 미용실에 갔다. 마침 한가한 오전시간이라 미용사는 차근차근 빗질을 하며 아이에게 머리카락도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미용사가 권하는 커트 길이가 딸아이가 원하는 길이보다 짧자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지켜보던 나는 얼른 분위기를 파악했고 미용사도 딸이 원하는 길이에 맞춰 커트를 시작했다. 커트하는 동안 미용사는 머릿결 관리에 샴푸, 린스와 에센스 사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내게는 그리 특별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귀를 쫑긋하며 듣는 듯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해 주셔야 해요. 딸이 있으셔서 부러워요."
"네."
"엄마, 잘해주세요. 에센스도 자주 발라야겠어요."
'외모에 점점 더 신경 쓰게 되겠지.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니 남아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자주 머리를 빗겨주고 관리하는 전용 미용사로서의 특권을 누려봐야겠네.'
여기에 더해,
'제발, 엄마 말 좀 들어라. 고집 좀 적당히 부리고. 딴 사람말은 잘 듣는 척이라도 하는데 왜 부모말은 그리 안 들을까? 부모 말도 들을 땐 좀 들어라.'라고 소리 없는 외침도 함께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