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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아이들이 제일 행복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2

by 태화강고래

"어제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하루를 다시 살고 싶을 만큼 마음껏 웃고 떠들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건 딸아이뿐이었을까?


설날이라고 여동생이 중학교 3학년 올라가는 여자 조카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남자 조카를 데리고 놀러 왔다. 특히 장난기 가득한 남자 조카는 우리 아들을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해 형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라 했다. 부모 세대만큼 형제가 많지 않다 보니 사촌이 귀하디 귀하다. 그들에게, 이모집에 유일한 사촌들이 살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유년기를 가까이서 보내지 못했음에도 자기들끼리는 통하는지 1년에 3~4번 만나도 어색함이 1분도 채 안돼 사라졌다.


밖에서 뛰어놀 나이는 지났으니 온라인 게임을 할 줄 알았다. 예상밖에 둘러앉더니 서로를 마주 보며 보드 게임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스머프사다리게임, 할리갈리, 로보 77을 선택했다. 정적이며 머리를 쓰는 게임보다는 즉흥적이고 빠르게 전개되는 게임을 택한 듯했다. 사춘기 아들은 혼자 조용히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고, 나머지 셋은 소리를 질러대며 보드 게임에 빠졌다. 서로 리액션을 주고받느라 거실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여동생네 남매는 죽이 척척 맞았고, 그들의 리듬에 따라가느라 딸아이도 애쓰는 모습이었다. 오래간만에 텐션 높은 사촌을 만난 딸아이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푸는 듯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동생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간이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신나게 게임에 임했다. 엄마, 학원, 시댁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다고. 명절에 외갓집 작은 방에서 사촌언니오빠들과 놀았던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집에서 설 차례를 지내고 쓸쓸한 명절이 진절머리가 날 때면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진도 큰 외삼촌댁에 내려가셨다. 때마침 광주에서 작은 외삼촌께서 오빠들을 데리고 큰 집에 오시면 그날 밤 우리는 시간이 아까워 밤에 잠을 안 잤다. 큰 외삼촌댁 언니들과 우리셋을 포함해 총 7명이서 특별한 게임 용품 없이도 손짓발짓하면서 까불며 놀았던 것 같다. 무슨 놀이를 했는지 기억은 전혀 없지만 외숙모 눈치를 보며 놀기에 밤이 짧았다.


이제는 명절이라고 윷놀이 같은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면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게 전부다. 올 명절, 보드 게임에 빠져 노는 아이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다. 지켜보았을 뿐인데 우리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순순하게 게임에 몰입해 놀 수 있는 철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정치이야기, 성적과 공부 이야기, 돈이야기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 없이 명절을 신나고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가족과 친척이 오랜만에 모여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영화 속 이상적인 모습처럼 비쳤다. 시댁에서는 아버님의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가 어색했고, 친정에서는 애처로운 엄마의 병원 이야기로 편치 않은 명절을 보낸 터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더욱 빛났다. 급격한 변화와 불안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삶이 더욱 팍팍해진다고 느껴지는 나이인 만큼 서로 웃고 보듬는 시간이 더욱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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