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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가 전하는 마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4

by 태화강고래 Feb 06. 2025

이번엔 내가 먼저 썼다. 우리는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짧게나마 편지를 주고받는다. 딸에게 사과의 편지 한 장을 써 내려갔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마음에 걸리는 내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지울 수도 없기에 손 편지를 쓰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아직은 초등학생을 상대로 짜증을 낸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짜증 섞인 말도, 상대가 듣기 싫은 말 잘 못하는 성격이면서 약한 아이를 상대로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은 건 아니었나 아차 싶었다. 사사건건 반응하고 내 리액션을 기대하는 딸아이에게서  피로감을 자주 느낀다. 그날 밤도 그랬다. 10시가 다 되도록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하며 수학숙제를 하는 딸아이 옆에서 졸리는 눈을 하고 앉아 있었다. 까불까불 굴더니 문제 하나 풀고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나 천재인가 봐! 어려운데 풀었어!

맞아! 대단하네!


난 맞장구를 잘 쳤다 생각했지만 딸의 분위기는 순간 달라졌다. 기분 나쁘다는 말에 또 시작인가 싶었다.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굴리는 딸에게 맞춰주기 힘들어하는 엄마로서 고충을 말해버렸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자세가 아닌 게 문제였다. 


손 편지를 받은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를 받아줬다. 말로 사과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어 보였다. 워낙 손 편지를 좋아하는 아이지만 특별한 날도 아닌 보통날에 사과한다는 엄마의 마음이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진하게 전해진 듯했다. 앞으로도 엄마가 짜증내면 그 편지를 부적처럼 앞에 보이라고. 웃으면서 그리하자고 기분 좋게 서로 풀었다. 


간단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그냥 말로 머쓱하게 하는 것보다 짧은 손글씨 편지가 효과적이다. 아날로그식 표현방식을 딸도 나도 친정엄마도 좋아한다. 특히 외할머니를 위해 정성껏 편지를 쓰는 딸아이를 지켜볼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엄마 얼굴이 떠올라 고맙고 기특하다. 대학 졸업 후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 못했다. 이제는 손녀가 볼펜을 꾹꾹 눌러쓰며 외할머니를 위해 염려와 응원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유일하게 딸아이만 외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넨다. 지난 설에도 손편지와 그린 그림을 건네는 걸 보고 조카들과 동생들이 놀랬다. 그걸 왜 썼어? 누가 시켰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 속에서 딸아이는 21세기 AI 시대에 맞지 않는 너무도 감성적인 동화 속 인물이었다. 어떤 AI가 외할머니를 생각하는 딸아이의 진심 어린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무거운 마음으로 그저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어리석은 짓을 예전만큼 덜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을 자주 보여줄 때 깃털처럼 가볍게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털어버릴 수 있는 건 때를 놓치지 않고 시기적절하게, 말로 어색하다면 손 편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끔 손글씨로 전하는 기쁨과 받는 행복이 아직은 유효하지 않을까. 손 편지가 천연기념물이 되어가고 있는 디지털시대에 생각지 못한 손 편지가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낭비하며 편지를 왜 쓰지?"라고 단칼에 쓴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며 효력이 미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상대를 봐서 손 편지를 건네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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