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9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한 입에 쏙 들어가는 ABC 초콜릿을 샀다. 개별 포장 덕분에 혼자 입에 슬쩍 넣기도, 여럿이서 나눠먹기에도 딱 좋았다. 82년도에 출시된 이후 40년 넘게 간식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이제는 나 대신 딸아이가 가끔 사서 나눠준다. 며칠 전, 발렌타인데이라고 아끼는 용돈으로 한 봉지 사 오더니 아빠, 엄마, 오빠에게 건넸다.
"맛있죠! 엄마, 사랑해요! 아이 러브 유!"
그냥 주지 않고, 초콜릿을 이어 붙여 하트를 만들고 "사랑해요"라고 마무리지었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은 듯, 초콜릿이 없어도 딸의 자그마한 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콤함을 전하느라 바쁘다.
"사랑한다"는 그 말. 예전에 아빠가 진한 술 냄새를 풍기며 "사랑해"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다. 지금 같아선 "저도요, 사랑해요."라고 말할 것 같은데, 그땐 그렇게 못했다. 술기운을 빌어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셨을 텐데 술냄새가 싫었다. 엄마는 아빠만큼의 용기도 없었다. 다섯 명이 살았지만 딴 세상 언어인 듯 누구 하나 닭살 돋우는 그 말을 가까이하지 못했다. 마음은 충만했으나 표현력은 빵점이었다. "사랑해"는 좋아하는 말이지만 입술이 허락하지 않는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앙증맞은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가족에게,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안타깝지만 마음먹었다고 수도꼭지 틀 듯, 바로 나오지 않았다.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생일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에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쓴 것을 읽어주고 가끔 모기 같은 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혼자 하기에는 여전히 어색한 그 말이지만 딸 덕분에 나란 사람도 오그라들지 않고 술술 리듬을 타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법에 걸린 듯, 함께라서, 눈앞에 보이는 메아리 효과 덕분에 가능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딸아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선생님처럼 그 귀한 말을 가볍게 던지며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부모에게 배우지 못한 그 말을, 부모가 돼서 배우며 연습하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일상 속 고맙다는 말은 상대방이든 나에게든 자연스레 나오는데 사랑한다는 그 말은 참 어렵다. 엄마도 듣고 싶을 그 말을 여태 하지 못 했다. 입에서 머물다가 뭉개져 다른 말로 대체되어 버린다. 마음 쓰고 챙기는 것과는 다른 맛일 텐데, 부끄러워 망설인다. 고모들이 전화를 끊기 전에 "사랑해."라고 하실 때도 1초간 머뭇거리다가 "사랑해요, 고모"라고 대꾸하는 나를 보면 아직 멀었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 어른들을 향해서도 용기를 내야 한다. 들으면 기분 좋은 말, 들려줘도 웃음 짓게 하는 말을 앞으로 자주 할 것이다. "러브 유"로 가볍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미드 속 인물들처럼 입에 달고 살아야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한동안 같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제목 그대로 참 좋은 말이다. 기분 좋게, 신나게, 죽는 날까지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말을 아낌없이 해 주고 싶다.
참 좋은 말 (2007년 25회 MBC 창작 동요제 대상 수상곡)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 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아빠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 맛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인데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나는 나는 이 한마디가 정말 좋아요
사랑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