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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보다 더 달콤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8

by 태화강고래

운동을 마치고 가는 길, 눈앞에 풋풋한 중학생들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도 되는데 내 눈은 그쪽을 향했다.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서 있는 여학생과 가볍게 웃으며 달려 나오는 남학생은 서로 손을 잡았다. 곧이어 여학생에게 남학생은 반쯤 안겨버렸다. 그의 얼굴이 단꿈을 꾸는 아이처럼 아주 편안해 보였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행복한 표정을. 다시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이틴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좋을 때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올랐다. 발렌타인데이라고 만난 걸까. 방학이니 같이 만나 공부하러 가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


같은 라인에 사는 남학생은 아들보다 한 살 많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터라 아이의 엄마와 인사하고 지내는데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가 핑크빛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요새 "사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학교와 아파트를 오가며 커플이라고 세상에 외치는 아이들을 자연스레 마주친다. 자녀에게 이성 친구가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한다. 라떼시절, 몰래 사귀는 건 기본에, 어쩌다 사귀는 걸 들킨 학생을 날라리라 했었는데, 지금은 딴 세상이 된 듯하다. 이성교제하는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살얼음판 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일 것 같은데, 그날 그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우리 아들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보이는, 실실 대는 얼굴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학생 스스로가 쓴 "난, 행복해"라는 문장. 이왕 사귀는 거, 서로 응원하며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랐다.


발렌타인데이가 지나갔다. 이상기후 여파로 코코아 가격이 급등해 초콜릿 가격도 11.2%나 올랐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이어지는 고물가에 어수선한 나라 상황으로 여느 때보다 초콜릿 구매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한 썰렁한 날이었다는 기사를 얼핏 봤다. 꼭 00 날에만 챙길 필요가 있을까. 언제든 원할 때 달달함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인데. 그날 따라 초콜릿을 사서 먹지 않았어도 충분히 달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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