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불어도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

by 태화강고래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 안내문자가 여러 번 울렸다. 창문으로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식탁에 앉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녹색어머니 봉사하는 날인데 비가 엄청 온다. 빗소리 좀 들어봐."

"어떻게, 하필. 오늘이라서. 엄마. 옷 따뜻하게 입고 가요."

"그래. 좀 그치면 좋을 텐데. 할 수 없지. 학교 잘 다녀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경량패딩을 입고, 우산을 쓰고 나섰다. 역시 바람이 셌다. 비는 약간 그친 듯해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둘째 반 녹색어머니 봉사하는 날이다. 올 초 큰 애 봉사활동을 한 번 경험한 후 두 번째라 부담이 덜한 상태로 나갔다. 문제는 날씨였다. 한 손은 우산을, 다른 손은 교통 깃발을 들고 섰다. 내가 서는 자리는 신호등이 없고, 아파트 옆 상가로 차가 들락날락하는 위치였다.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상가 차량도 보면서 깃발을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다. 여유로운 봉사 위치가 아니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 초등학교 학생수를 확 끌어올린 탄천 건너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오늘에서야, 이 자리에 서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 아파트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길을 여러 번 건너 멀리서 등교하는 아이들이 수고스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서 있는 쪽으로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여지없이 우산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대각선 방향으로 선 다른 엄마도 열심히 깃발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산은 괜찮아 보였다. 뒤집힌 우산을 잡아당기느라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쳐다보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산살을 겨우 정돈하고는 우산 쓰기를 포기했다. 존재감 없는 평범한 봉사활동 그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 비를 맞으며, 아이들이 무사히 건널 수 있게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아이도 있었고, 비를 맞고 서 있는 나를 쳐다보고 가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학교 가기에 바빴다. 깃발 움직이기를 40여분. 9시가 되자 더 이상 지나가는 아이들이 없었다. 건너편 엄마가 자리를 정리하는 것을 보고 시계를 보니 9시 5분이었다. 나도 우산을 펴고, 조끼와 깃발을 반납하러 아파트 경비실로 걸어갔다.


쌀쌀한 날씨에 비를 맞고 40여분을 서 있다 보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집안의 온기가 새삼 고마웠다. 따뜻한 차를 끓이고 무릎담요를 가져다가 소파에 앉았다. 며칠 목이 칼칼했는데 감기가 심해질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잠시 몸을 녹이고 쉬었다가 새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마침 비는 그치고, 블라인드 사이로 밝은 햇살이 거실을 비췄다. 반가운 햇살. 비는 멈추고 바람은 간간히 세게 몰아치고 있었지만 세상은 이전보다 밝아진 기분이었다.


오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궂은 날씨에 한 자리에 서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나를 지나치는 아이들처럼, 나도 항상 나무를 스치듯 지나갔는데 말이다. 늦가을 계절 탓인지 어제오늘 나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는 나무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가 떠올랐다. 그중에서 태백의 소나무를 아버지의 희생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부분이 생각났다.


가파른 바위틈이나 산등성이에 독야청청 푸르게 자리 잡은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결코 그 삶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없이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나에겐 그 모습이 마치 태백의 소나무 같다. 저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가족을 등에 업고 세월의 굴곡들을 넘어 지금에 이른 그 모습이, 긴 세월의 시련을 견딘 후 바위에 굳건히 자리 잡은 소나무 같지 않은가 (33쪽)


소나무 챕터를 읽을 때,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자식들 공부가 뒤처지지 않게 뒷바라지했던 내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공사판 막노동부터 건설현장 관리자로 마지막에는 대표로 험난한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고 부족함 없이 우릴 키운 돌아가신 아빠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힘들게 버텨냈었을까, 그 덕분에 자식들은 비바람을 덜 맞고 편히 자랐는데. 그리고 성장한 자식들은 이제 스스로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며 살고 있다. 부모가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나도 아빠처럼, 나무처럼 묵묵히 내 속으로 난 자식을 지켜내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세상의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와 의지를 다지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짧은 봉사활동이었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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