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늦가을, 아니 초겨울이다. 절기상 어제가 입동이니 겨울이 되었다.
며칠 전 이모부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서로 왕래도 없고,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부고 소식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빠가 이미 10여 년 전 환갑을 갓 넘기고 돌아가셔서 그런지 친척어른들의 부고가 그리 놀랍지 않고, 때가 되셨나 보네, 그래도 우리 아빠보다는 오래 사셨네라는 생각만 든다. 각자의 사정은 잘 모른 체 내 마음은 그런 반응을 보였다. 외사촌 언니는 거의 5년 만에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언니의 목소리는 예전의 기억 속 목소리처럼 아무 일 없는 듯, 안부 전화하듯, 떨림과 울먹임이란 애초부터 없었던 감정인 것처럼 편안했다. 평생을 특별한 일없이 그저 집에서 허성세월 보내고 엄마를 죽도록 고생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모든 감정을 눌러버린 듯했다. 몇 해 전부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원신세를 질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이모를 더욱 힘들게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 훌훌 털고 이승을 떠나셔도 자식으로서는 아쉬울 게 하나 없다는 언니의 말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오래간만의 부고가 잊고 지냈던 친척, 가족, 죽음,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잊고 지냈다. 그동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을.
흔히 복을 누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대개 평균 수명이상의 천수를 누리다 별세하신 분의 상사를 호상이라고 한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있지만 좋은 분위기로 떠나보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축제 같은 분위기의 장례식도 있다. 30여 년 전, 내 기억 속 할머니의 장례식은 특별했다. 임권택 감독의 1996년 축제라는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화려한 상여행렬을 따라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다. 진도가 고향인 할머니의 장례는 진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상여소리(만가)를 재현한 것과 같이 특별했다. 장지인 진도까지 친인척들이 모두 모인 장례식에서 효자인 아빠는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정성을 다해 자식도리를 다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내 눈에는 어느 왕의 장례식만큼이나 화려했다. 정작 아빠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면서 충격과 슬픔만을 남기고 가셨다. 아빠가 할머니께 했던 것처럼 할 수 없던 우리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장례를 치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힘든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며 장례식은 어느 때보다 직계가족중심으로 간소화된 형태로 향해가는 듯하다. 친인척과의 교류가 중시되던 부모세대와 달리 우리만 해도 각자 바쁜 일상을 살기에 1년에 한 번 전화 안부 없이도 잘 살아간다. 어쩌다 받는 전화는 경조사. 그것도 온마음으로 달려가볼 수 없을 때가 많아 문자메시지로 받는 계좌번호로 성의표시를 보낸다. 이번 이모부의 부고에도 평일이기 때문에 진도까지 갈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우리처럼 평일에 서울에서 못 내려가는 조카들을 빼니 장례식에는 광주나 진도에 사시는 어른들만 조문하는 게 현실이었다. 거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점차 비혼과 무자녀가 사회현상으로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경조사 개념이 사라질게 명백하다. 지금 중장년층이 부모의 노후를 그나마 책임지는 세대이고 점차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기에 부고도 가족끼리만 전할 것 같다. 농업사회, 산업화시대를 지나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앞으로는 어떤 시대가 올지 궁금하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마지막 시간을 마주할 때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독사 뉴스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가족에게만이라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살아야지. 이건희 회장처럼 미술품을 남기고 난치병환자를 돕는 선행으로 기억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내 가족으로부터 '잘 살다 죽었다'는 말만이라도 듣는 게 목표이다. 너무 쓸쓸한 죽음을 남기지 않도록 나를 살피고 가족을 살피며 살고 싶다. 낙엽으로 치장한 이 계절에 오랜만에 부고를 듣고 몇 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