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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맛 우유의 기억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53

by 태화강고래

엄마가 저 임신했을 때 미슥거려서 바나나맛 우유 먹고 속을 달랬데요.

오빠랑 하나씩 빨대 꽂아 먹었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시켜 드렸어요.

다행히 그걸 마시고 속이 조금 편해졌대요.


바나나맛 우유?


시누이와 통화 중에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그 친근한 노란 단지 우유. 며칠 전, 안부 전화에서 어머니는 감기몸살로 열이 나서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뭐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당장 뭘 사드릴지 몰라 주말에 찾아뵙기로 마음을 정하고 시누이에게 물어봤다. 며느리보다는 역시나 딸이 세세하게 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입맛을 돌게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바나나맛 우유가 나왔고, 남편도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했다.


50년 전, 갓 30대에 들어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4살 된 아들 손을 잡고 찾아간 동네 가게에서 시원한 바나나맛 우유를 샀다. 엄마가 뱃속의 동생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리 없는 아이는 손에 받아 든 달달한 노란 물을 마셨고, 그 모습을 보며 엄마도 쭉 들이켰다. 맛있지 맛있지, 마치 물을 끼얹어 깨끗해진 마당처럼 답답한 속이 개운해지자 한층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예전에 바나나맛 우유를 드시고 속이 풀리셨다면서요, 저도 사 왔어요.

응, 그때 그랬어. 그 뒤로 안 먹다 오랜만에 마셨는데 신기하게 효과가 있더라. 여기 하나씩 마셔.


79세와 80세가 확연히 다르다고 올해 자주 말씀하셨다. 감기로 더욱 홀쭉해진 80세 어머니는 바나나맛 우유를 천천히 천천히 빨아 드셨다.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어쩌면 마트나 편의점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볼 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해소했지? 임신 중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음료나 매콤한 음식을 찾았다. 특히 탄산수를 달고 살며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70년대 임산부였던 어머니는 바나나맛 우유를 처방약으로 택하셨다니. 그때도 있었다니, 정말일까. 그랬다, 1974년에 출시되어 50년 넘도록 장수템으로 사랑받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K푸드 열풍의 주인공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공항에 도착하자마 편의점에 들러 바나나맛 우유를 사야 하는 게 유행일 정도로 인기다. 누군가의 힐링 음료로서 앞으로도 건재하겠지. 어머니를 뵙고 오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인생 음료라고 할 만한 게 엄마에게도 있을까? 딸이 내게 묻는다면 난 뭐라고 답할까?







*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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