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8
"목소리가 우아하다는 말 들어본 적 없어요?
60대쯤 된 줄 알았는데 청춘이네요."
나도 한번 취미생활을 해 보려고,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서예학원에 문의 전화를 했다. 2-3여 년 전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워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재를 사서 집에서 연습을 했다. 한번쯤은 강사의 지도를 받고 싶은 욕심에 올해가 가기 전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1-2군데 전화를 돌렸다.
첫 번째 학원에서 약간은 괄괄한 목소리의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오전은 10시 30분 1타임 밖에 없다고 하면서, 지도 후 연습은 자유롭게 와서 하면 된다고 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대뜸 내 목소리를 듣더니 "목소리가 우아하다"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학원 문의 시 오고 가는 대화가 아니었다. 40대 중반이라고 밝힌 내게 60대인 줄 알았다고, 근데 아직 청춘이라며 혼자 웃었다. 우아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느냐면서 본인의 평가까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냥 웃어넘겼지만, 전화를 끊기 전 한 마디가 더 흘러나왔다.
"우아한 목소리의 얼굴 보고 싶네요. 커피 마시러 한 번 들르세요."
나도 모르게 부담이 확 느껴졌다. 농담조로 원생을 유치하는 방법일 수도 있었을 텐데 왠지 가고 싶지 않았다. 억척스럽지 않고, 하이톤도 아닌 조용한 내 말투가 상대방에게는 우아하게 들렸을까? 모를 일이다.
나도 전화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특히 병원의 진료예약실이나 애들 학원선생님과 통화를 해야 할 때가 그런 경우다. 소심한 성격 탓인지 조곤조곤, 친절함이 스며 나오는 목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신뢰한다. 짜증 내는 말투나 그런 일말의 분위기가 느껴지면, 바로 긴장하고 갑자기 을의 자세를 취할 때도 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이 상냥한 통화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상대방도 내 목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안되게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우아한" 통화는 칭찬인 것 같은데 불편했다. 선을 넘은 듯했다.
다른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강사는 밝은 목소리로 나를 응대했다. 여기도 오전은 11시 1타임 있다고 하면서 수강료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른 지역에서도 수강생들이 찾아와서 미안한데 내가 근처에서 온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내 또래일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번 통화에서는 오히려 내가 기분이 좋아졌다. 활기 넘치는 목소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상대방은 내 목소리를 듣고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도 궁금해졌다. 특별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으니 이만하면 된 듯했다. 시각적인 첫인상만큼이나 청각적인 인상도 참 중요하다.
혹시 내가 평가받을 때와 평가할 때의 상황의 차이로 마음의 반응이 달랐을까? 첫 번째 학원 강사는 나보다 연배가 높은 거 같고, 두 번째 학원은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대일 것 같다.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좀 더 끌리고 편한 느낌이 드는 곳인 두 번째 학원에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마음속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입 밖으로 내뱉기 전 한번 더 생각하고, 특히 첫 만남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가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