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9
며칠 동안 가볍게 동시에 꼭꼭 씹어서 읽은 책이 있다.
한숨에 다 읽을 수도 있었는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우연히 E-BOOK을 검색하다 알게 된 서메리 작가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였다. 번역가, 작가, 강사, 유투버 등 여러 타이틀로 묘사되는 작가의 책이다. 플랫폼을 활용한 N잡러가 대세인 시대인 만큼 다양한 N잡러가 되어 자동 수익을 창출하는 이야기는 사방에 가득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길어진 수명덕에 제2, 제3의 인생도 준비해야 하는 때이며, 자동수익을 권하는 시대를 사는 터라 그녀의 책에 관심이 갔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직장인이 행복한 N잡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특성을 가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용기와 태도가 나를 붙잡았다. 나를 이끄는 롤모델로 삼고 싶어 기록으로 남긴다.
첫째, 그녀도 나처럼 내성적이고 '사내정치'에 적응하지 못한 직장인이었다.
내 경우, 영어를 만지는 "특수" 업무 덕분에 10년의 직장생활동안 부서 배치와 인사이동과 같은 보통의 직장인이 경험하는 애환은 없었다. 그저 근무처를 옮겼을 뿐이다. 대기업을 제외한 공공기관, 비영리기관, 스타트업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개별 직장에서 영어로 밥벌이를 했다. 국제교류와 해외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간단히 말해 영어를 도구로 글로 말로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업무였다. 보통 혼자 담당하는 일이 많아 사내정치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월급 받고 직장인의 명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육아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렇게 어디선가 직장인으로서 살고 있었을 것 같다. 서작가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일하는 고통을 버리고, 조직밖에서 먹고살 궁리를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처럼 나다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녀는 직장인의 고충의 대가로 얻는 안정적인 월급, 명함, 복지, 4대 보험보다 스스로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생계형 N우물 파기'라는 도전을 하면서.
둘째, 그녀도 나처럼 영문학과를 졸업한 문송한 사람이었다. 흔히 돈 버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문과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잘 살피고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는 데에서 놀라웠다. SNS를 잘 활용하여 요리 레시피부터 책 리뷰까지 닥치는 대로 포스팅했다고 처절함이 느껴지는 자기 고백을 읽었다.
"그 시점의 나는 반쯤 악에 받쳐 있었고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한 우물만 파라는 가르침을 평생 떠받들며 살아온 내가 별안간 온갖 자리를 파헤치기 시작한 데는 이런 절박함이 있었다. 굻어 죽으나 말라죽으나 어차피 똑같은 엔딩이잖아. 그러니 그전에 후회라도 남기지 말자. 그렇게 궁지에 몰린 백수 쥐는 N잡이라는 고양이를 덥석 물었다. (23쪽)"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만큼 궁지에 몰린 쥐처럼 일을 찾아보거나 노력해 본 적이 없는 나를 봤다.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잠시잠깐 느끼고 말뿐 진심으로 그녀가 말하는 내 우물을 찾아, 파고, 점검하는 진지한 노력은 없었다. 개인 SNS 브렌딩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상 안 맞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떼기를 주저하며 하루하루 지나간 시간들이 아까웠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라며 자기 PR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말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으로, 그동안 방치한 블로그에도 관심의 씨앗을 키워볼 생각이다.
그녀가 말하는 우물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 관리하며 엄마로서의 역할과 함께 나다움을 찾는 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책을 덮었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에 치여 우물 관리가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그래도, 그녀를 통해 N잡러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일부분이라도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였다. 덧붙여 부지런히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신수정 님의 책 <일의 격>에 쓰인 그의 통찰을 적으며 내 삶의 방향을 정리한다.
당신이 그저 기분 좋을 때 환경이 허락할 때만 어떤 것을 한다면 그저 취미로 간직하는 것이 낫다. 절대 그것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 최고가 되는 사람은 그 지루함과 똥 덩어리에 굴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무소의 뿔처럼 전진하는 사람들이다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실패가 아닌 지루함"(36-3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