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42
아삭아삭 시원한 김치를 닭조림과 함께 저녁상에 올렸다. 내가 먹는 게 맛있어 보였는지 딸아이도 흰쌀밥에 김치를 올려 따라먹는다. 연신 맛있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김치 맛있어요. 감사해요!"라고 고모께 짧은 카톡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전화로 응답해 주셨다.
고모한테 김장김치를 얻어먹을 줄은 몰랐다. 엄마도 아닌, 고모한테서. 부끄럽지만, 올해로 4년째다.
음식솜씨가 좋았던 전라도 아줌마인 친정엄마와 달리,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함께 김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주택에 살았던 시절 추운 겨울 밤늦게까지 배추를 절이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보기만 했다. 추우니 밖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듣기만 했다. 김장날에는 동네 이웃분들과 함께 김치 속을 넣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고, 수육과 겉절이로 김장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추위에 맞선 노동의 대가로 밥상에 올라온 엄마의 김치를 편안히 앉아서 먹기만 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살고 싶다. 두 팔 걷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김장의 추억을 만들어 부끄럽지 않은 딸로 남고 싶다. 김장철만 되면 죄인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혼 후에는 시댁에서 김장을 해서 가져온다. 결혼 전에는 엄마한테서, 결혼 후에는 시댁에서 김장을 얻어먹는 불편한 주부이다. 그런 내가 고모한테서도 김치를 받는다.
아빠를 가장 많이 따르고 의지했던 막내고모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리 삼 남매를 각별히 챙겨주신다. 특히 암투병을 하는 내 안부를 먼저 물어주신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식당일로 잔뼈가 굵은 고모는 지금은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을 도와주시느라 여전히 바쁘신데도 조카 챙기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암투병과 함께 시작된 울산살이 첫 해에는 도우미 이모님이 김장을 담가다 주셨다. 수고비를 지불하고 먹는 김치라도 감사히 먹었다. 다음 해 생각지 못한 고모의 전화를 받았다.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겠다고. 맛이 없어도 사 먹는 것보다는 나으니 부담감 갖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다. 그날 전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2월 캄캄한 겨울밤에 고모 목소리는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김치로 고모의 사랑이 전해졌다. 그렇게 매년 인천에서 고모의 손맛이 담긴 김치가 우리 집 식탁으로 전해진다. 지금 사는 경기도로 다시 이사 오면서는 작년 말 고모가 근처에 볼일 보러 오시는 길에 직접 들고 오셨다. 4년 전 울산 가기 전에 뵀을 때보다 많이 늙고 마르셔서 김치 받기가 더 민망했다. 세월이 흘러 고모도 나도 같이 늙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는 김치를 안 보내셔도 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감사히 받았다. 부끄러움 대신 챙김을 받는다는 행복한 마음으로 김치를 받아 맛있게 먹고 건강하기로 했다. 건강해서 엄마를 돌보고, 고모께도 잘하는 조카가 되겠다고.
오늘 저녁도 고모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는다.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받은 고모가, 그 사랑을 나에게 전해주셔서 감사하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데, 잊지 말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