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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즐거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43

by 태화강고래

오래간만에 하나로마트로 남편과 함께 출동했다.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 사과 한 봉지 15,000원, 귤 13,000원을 보며 몇 번을 생각한 끝에 클릭하던 손가락 운동을 오늘은 쉬었다. 평소 3-4가지 과일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집 특성상 전체 식비에서 과일값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과일만 줄여도 생활비가 절약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과일 없는 일상은 화장실 다녀온 뒤 손을 씻지 않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누구는 과일 깎기가 귀찮아서, 과일 껍질 버리는 게 싫어서, 그냥 과일이 싫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은 예외다. 어릴 적부터 들인 습관이다. 제철과일을 먹는 것에 익숙하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복숭아와 수박, 가을에는 배와 감, 겨울에는 귤로 입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내 몸은 과일 없이 살기 힘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도 시댁에서 유일하게 과일을 좋아해서 부부의 과일 사랑이 지나칠 정도다. 과수원집 딸도, 과일가게 딸도 아닌데. 고물가 시대에 과일 한 봉지 사기가 무섭다는 것도 실감하는 요즘이다. 우리 집도 장보기가, 특히 과일값 지출에 신경이 쓰여 가짓수를 줄이고 있다. 주말부부라 남편이 없는 평일에는 아이들과 귤과 사과로 버티다가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는 남편을 위해 그래도 과일 한 두 가지를 더 준비해 둔다.


바람도 쐴 겸 오프라인 쇼핑을 나갔다. 지난여름 방문 당시 복숭아 상자가 높이 쌓여있던 매장안과 달리 오후시간이었음에도 손님도, 물건도 예상외로 적었다. 사과, 귤, 샤인머스캣, 배, 토마토, 딸기가 진열되어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썰렁함이 느껴졌다. 빈틈없이 쟁여진 곳에 소비자가 몰려있는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상품도 소비자도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풍경화의 일부가 된 듯했다. 과일값이 올랐으니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준 게 당연한 이치인데도 어색하게 보였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타 마트보다 약간 싼 것을 확인한 후 억누르고 있던 과일 쇼핑 욕구의 빗장을 열어버렸다. 남편도 같이. 배, 사과, 귤, 감, 딸기를 카트에 실었다. 금딸기라는 딸기 한팩도 신용카드 할인 덕분으로 7,000원 주고 올해 처음 샀다. 손님 접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소중한 우리 식구 입에 넣을 목적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운 듯, 과일로 채워진 냉장고를 보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감기몸살로 힘든 몸이 비타민 투여 덕분에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받는 것보다 자연식품의 효능이 더 좋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감사히 내 몸속에 들였다. 감기를 쫓아내 달라고.


살기 위해 먹을까? 아님 먹기 위해 살까?

여러 과일을 먹는 즐거움에 몸도 마음도 업되서 갑자기 이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생애과정에 필요한 본능으로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루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삼시 세끼가 아닌 간헐적 단식이든 바빠서 건너뛰든 하루에 한 끼는 먹으며 생명을 연장해 살아간다. 아무리 고상한 사람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배고프면 먹어야 살 수 있다. 살기 위해 먹기 때문에 밥벌이가 중요하다. 문제는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는 본능적 행위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기에 어떤 것을 먹는가가 관심사가 된 지 오래되었다. 건강을 위해 먹는가, 타인보다 비싼 것을 먹는가, 반대로 가성비가 좋은 것을 먹는가. 각자의 생활여건과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먹기 전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같은 SNS에 올리는 건 일상이 되었다. 세상이 맛집을 소개하는 사람과 본인도 먹어봤다고 인증하는 사람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소확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행위는 마치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어 보인다. 지금도 끊임없이 맛집 관련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한편으로는 고물가에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가성비 좋은 상품판매의 급증을 다루는 기사가 연일 나온다. 배달앱을 끊었다는 20-30대 소비자들의 기사도 심심찮게 보인다. 오마카세를 먹던 젊은 층의 과시형 소비가 갑자기 하락세로 접어들고 무지출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의 소비 트렌드를 포착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일관성 없이 상황과 시류에 따라 빠르게 선호와 행동, 태도가 바뀌는 '모순의 일상화'가 최근 소비 트렌드의 특징으로 꼽혔다... 대홍기획은 급부상하던 트렌드의 열풍이 갑자기 꺾이거나, 정반대 되는 소비 행동이 공존하는 현상을 현재 트렌드의 특징으로 포착했다. 예를 들어 골프나 오마카세 등 최근 젊은 층이 열광하며 급성장한 분야가 갑자기 하락세로 돌아서고, 어제까지 '플렉스'(과시형 소비문화를 일컫는 신조어)를 외치던 사람들이 오픈채팅 '거지방'에서 무지출을 결심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1208043100003?input=1195m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지출을 줄여 살기 위해 먹는 트렌드가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는다면 팍팍한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다. 뻔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남들과 비교하거나 단지 과시하기 위한 소비보다는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맞고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먹는 즐거움을 더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나는 단지 살기 위해 먹지도, 먹기 위해 살지도 않는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즐겁게 먹는다. 먹는 즐거움과 사는 즐거움을 공존시키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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