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오픈런을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똑닥이라는 예약앱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대기해야 할 것 같아 서둘렀다. 오전 8시 30분에 진료를 시작하는 집 앞 소아과에는 벌써 접수를 마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8시 30분인데. 진료시작 시간에 맞춰 들어간 우리는 대기 16번이었다. 콜록대는 신생아부터 성인까지 복작스런 40여분이 흐르고 3분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딸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냈다.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오후 3시쯤이 돼서야 깨달았다.
아이고!
오전 안약을 안 넣었다!
내 시력 지킴이 안약을 깜빡하다니 처음이었다. 놀란 마음에 부랴부랴 양쪽 눈에 한 방울씩 점안한다.
오전 8시 30분, 오후 8시 30분
하루에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알람이 울린다. 작년 7월, 녹내장 진단 이후 하루에 두 번 안약 넣는 시간이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은 900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 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암 진단받은 것만큼이나, 어쩌면 실명과 연관된 질병인지라 더 충격적이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건조증 안약 처방을 받으러, 아이들 시력검사부터 드림렌즈 검진까지 안과에 수시로 들렸던 숱한 날들 가운데 한 번도 망막 OCT( 망막 빛간섭단층촬영(Optical Coherence Tomography))를 찍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안과의사도 녹내장 검사를 권유하지 않았던 것을 미안해하기도 했다. 종합검진 후 녹내장 의심 소견이 나와 안과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녹내장.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고도근시이며, 40대라 정기적인 녹내장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40대로서 몸 곳곳에서 노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글로 보고 남들의 노화현상을 듣기는 했어도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막상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려웠다. 울산에서 유명한 대형 안과전문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대학병원에서 재검을 하고 싶어졌다. 병원 한 곳에서만 검사 후 암선고를 받았던 기억이 나면서 눈만이라도 혹시라는 생각에 재검받고 오겠다고 하면서 안과를 나왔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카페에 앉아 잠시 마음을 추슬렀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여름인데, 내 마음은 한겨울이었다. 카푸치노를 앞에 두고 나를 위로했다.
1주일 뒤 대학병원 안과에서 다시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이미 들은 대로 녹내장 초기였다. 두 번째 들으니 충격이 덜했다. 오진이었기를 바랐지만,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희망이었던 걸까. 왼쪽이 오른쪽보다는 조금 더 진행된 상태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녹내장인 정상안압(10-20mmHg) 녹내장이다. 정상안압인데 시신경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하기 때문에 안압이 정상범위라도 충분히 낮춰줘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정상안압 녹내장은 관리만 잘하면 대부분 진행속도가 빠르지 않아 실명까지 되는 경우는 잘 없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할 수 있는 게 아직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안약을 꾸준히 넣어주고 정기검진을 통해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 같은 것이다. 암과 더불어 녹내장이라는 평생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
그저 노화현상일 수도 있겠으나, 암에 걸린 것처럼 녹내장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든 어떤 불행에서든 자신만은 예외이길 바라는 것처럼, 나도 동화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 건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온전한 해피엔딩을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나마 매일 안약을 넣는 루틴을 갖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눈의 피로도가 심해 가급적이면 책과 모니터에 집중하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중간중간 휴식을 하며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예전같이 한 번에 2시간 이상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체조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녹내장 안약 생활수칙 안내문
녹내장 안약은 두 가지 약을 사용해 봤는데, 공통적으로는 눈에 점안하면 따갑고 작열감이 느껴진다. 눈물이 흐른다. 첫 번째 쓰던 안약은 오후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졸리는 현상이 반복되어 경기도로 이사 온 뒤 현재 다니는 병원에서 약을 바꿔주었다. 다행히 졸리는 현상은 없어졌다. 여전히 따갑고 쓰리지만 사용 후 6개월 후부터 적응된 듯하다. 생활수칙도 있다. 최대한 안압 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눈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40대 이후 특히 노인성 안과질환으로 여겨지던 녹내장이 전자기기 사용의 증가로 20-30대 젊은 녹내장 환자도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보건의료빅데이터 개방시스템에 등록된 안과 질환 통계(2018~2021). 특히 휴대폰 사용이 늘면서 근시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와도 연관이 있어 젊다고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녹내장을 비롯해 노인성 질환이 점점 성인 질환으로 확대되고 있어 모두가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