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울만한 취미활동이란 게 없이 살았던 나는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 감추기 위해 독서와 영화감상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두 가지를 택해 번갈아가며 빈칸을 채웠다. 언제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거 같지 않아서였다. 그저 조용히 혼자 즐기는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영화를 빼어나게 설명할 정도는 아니었다.
취미활동에 빠지기보다는 그저 학교 시험에 맞춰 공부하기에 바쁜 일상을 살았다.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한다는 강박에 딴짓을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살았다. 성인이 돼서도 하루하루 사는 게 벅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참, 어리석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잘하는 건 더더욱 모르겠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도 변한 게 없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대는 바뀌었다. 취미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취미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치면,
부캐 전성시대, 부캐로 돈 버는 시대, 취미 부자, 부캐 수집가, N잡러
이런 단어들이 먼저 보인다. 게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본캐와 부캐라는 게임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생계와 연결된 일은 본캐지만 직장밖에서 부수적으로 하는 일을 부캐라고 한다. 주로 취미활동을 통해 또 다른 삶, 자아실현의 다른 측면을 다루고 있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내 속에 너무도 많은 내가 있는 사람들이 끼를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이 깔린 시대이다.
직장인뿐만 아니라 주부도 부캐를 가지고 싶다. 전문적인 부캐활동을 통해 성공한 사람은 경제적 수입까지 얻는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 덕분에 부캐 활동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동안 어디 숨어있다 세상밖으로 나왔는지 싶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유투버들로 가득하다. 취미라고 포장되었지만, 시간과 노력이 단순 취미 이상으로 오랜 시간 투자되어 전문가급에 달한다. 또한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아도 스스로 부캐를 가지며 일상을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브런치작가님들만 봐도 본업인 본캐외에 작가라는 부캐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그저 즐기는데 존재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즐기는 일을 하는 자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말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산다. 삶의 다양한 가치 추구를 인정하면서 자신을 잘 알고 색다른 행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미 100세 시대를 살아갈 준비가 된 듯하다.
"내 마음을 좋아하는 무언가에 할애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블로그를 해 봤으면 좋겠다"(유명 블로거)는 말처럼 나도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삶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가득 찬 나를 조금은 내려놓고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다. 하고 싶던, 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씩 발견하여 도전하는 일상을 사는 게 파랑새의 행복일 듯 싶다. 조급함은 버리고, 인내심을 갖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캘리그래피를 연습하는 게 지금의 나다. 활동적인 취미도 가질 계획이다. 그냥 좋아서 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전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길,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그때 하길 잘했어라고 칭찬 한 마디 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땐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