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땡!

평생을 그리 산 엄마

by 지니의 쉼표

한 회사에서 33년을 근속하시고 정년을 하신 엄마는 몸에 밴 듯 7시면 일어나셨다.

우리가 한창 클 때는 더 일찍 일어나셨지만 퇴직을 하시곤 일이 없으셔도 7시면 규칙적으로 일어나셨다.

출근을 하던 시간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33년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 시절은 토요일, 일요일도 일을 했던 시절이라, 주 52시간 이런 게 없고 365일을 회사에서 쉬라 허락한 휴일이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 거의 모든 날을 일을 하셨다.


엄마는 퇴직후 집에서 놀고 계신 적을 본 적이 없다.

첨 60 정년 이후 한 달인가를 쉬셨는데, 쉬시다가 엄청 아프셨어서 그 뒤로 엄마가 일부러 소일거리라도 만드셨다.


일흔다섯 뇌경색이 오시기 전까지 그렇게 사셨다.

엄마는 마실처럼 먼저 퇴사한 직장 친구가 있는 유니베*라는 알로에를 다니시며 수다도 떨고, 여행도 다니시고,

그곳을 노인정처럼 다니셨다.


성실이 몸에 배어 있으시니 7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8시까지는 가셨던 건지 혼자 출근하시듯 성실하게 십몇년을 또 그리 사셨다.


하루는 낮잠을 안 주무시는 엄마였는데 체력도 바닥이 났던 건지 유니베*를 다녀오고, 낮잠을 주무시다 8시에 눈을 뜨곤 지각한 줄 알고 놀라 얼른 씻고 전철역까지 나오다 그때서야 아셨단다. 아침 8시아니고 밤 8시인 것을 그리고 그날 저녁 나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이랬다며 얘기를 해 주는데 맞장구치면서 얘기는 들어 드렸지만, 난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 평생을 우릴 위해 사셨던 엄마라는 걸 내가 옆에서 봐 왔기때문에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었다.




두살 많은 언니랑 나는 시누이인데 시누이 노릇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누이 노릇을 하면 오빠랑 같이 사는 엄마가 불편할 거라는 걸 알기에

엄마의 속상한 이야기를 듣지만 '엄마의 시누이들처럼 득달같이 전화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막내지만 오빠와 새언니에게 대들었던 적이 2~30년을 통틀어 살면서 2번 정도 있다.


그중 한 번이,

오빠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알로에 다니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오빠가 엄마에게 화를 내며 뭐라 하는 걸 들었다.

"오빠는 엄마가 평생을 일만 하시다가 잠시 쉴 때 엄마가 엄청 아팠던 거 기억나지 않어?"

"알로에라도 다녀야 숨통이 트이시니 다니시는 거처럼 보이지 않어?"

"얼마 전 낮잠을 주무시다가 엄마가 지각한 줄 알고 전철역까지 갔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집에서 엉엉 울었어!" "평생 그리 몸에 배시게 일하신 엄마가 안쓰러웠는데 오빠는 안그래?"

그렇게 6살 많은 오빠에게 대들었다.




오빠 역시 엄마가 나이가 있으니 집에서 쉬시면 좋겠기에 그렇게 짜증을 냈겠지만,

나의 말을 듣기전까지는 나와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거 같았다.

내가 다녀간 뒤로 좀 덜 짜증을 냈다고 하는거 보면

오빠에게도 생각하는 시간이 였던거 같다.


퇴직했으매도 몸이 먼저 움직이며 사셨던 엄마.

평생을 그리 사신 것이 안 쓰럽지만,

성실히 사시던 엄마가 있었기에

엄마를 닮은 우리는 사랑도 많고,

성실하게,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람으로 잘 컸다.


"엄마의 7시 땡!"은 온전한 사랑이였다.






*사진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