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문 앞까지 온 그즈음 Skagit County의 Mount Vernon으로 갔습니다. I-5를 타고 밴쿠버 쪽으로 달리는 내내 저는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달뜬 마음이었습니다. 약간의 흥분 위에 더해진 설렘은 섞이지도 않고 이 봄날의 소소한 나들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넓게 펼쳐진 들판 사이 쭈욱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상쾌합니다. 창문을 내리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고 뭉게구름 사이로 황금빛의 아침 햇살이 쏟아집니다. 어느 순간 워싱턴 주의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표지판은 목적지에 다 왔음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RoozenGaarde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튤립들이 색깔별로 줄지어 평원 끝까지 까마득히 이어져 있습니다. 튤립들은 들판을 무지개색으로 물들이며 거대한 강을 이뤄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놀라운 광경에 압도당한 저는 한동안 튤립들의 군무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 봄날 저는 평화롭고 생기 넘치는 들판에 서서 생각에 잠깁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튤립 꽃들의 이야기가 소란스럽게 들려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튤립을 보다가 사진에 담다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초록 잎사귀 사이로 레드, 옐로, 핑크, 퍼플, 화이트 그리고 두어 가지 색으로 레이어드 된 튤립들이 탐스러운 봉우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꽃잎의 모양도 다 다릅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와 색깔의 튤립들이 있었다니 볼수록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튤립밭 뒤로는 파란 하늘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산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서 있는 키 큰 나무들, 미국의 전형적인 시골 나무집들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농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빨간색 농장 창고가 둥근 지붕을 이고 있고 그 사이로 파란색 트랙터가 놓여 있습니다.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흰색 풍차도 보입니다.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튤립밭 사이 진흙탕 길을 첨벙이며 돌아다닙니다. 튤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 모두 이 찬란한 봄의 한 때를 즐기고 있습니다.
농장 한쪽으로 가 보니 품종별로 튤립들을 심어 놓은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문득 시애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노란 튤립이 눈에 들어옵니다.
도도하고 우아한 자태로 흔들리던, 활짝 펼쳐졌을 때는 왕관 모양이 되는 아름다운 튤립. 그날 제가 발견한 ‘시애틀’은 오래된 폴더 속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튤립은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드넓은 평원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수많은 튤립들이 일제히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불그스름한 하늘가로 점점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형형색색의 튤립들이라니. 은유의 표현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신기한 땅에서는 모든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사월의 어느 봄날,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흔들리던 시애틀 튤립이 가끔 생각납니다. 어느 곳에 살 것인지 대체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학교가, 직장이 거기라서, 가족이 그곳에 살아서, 태어나 보니 그곳이어서. 유일하게 내가 선택한 단 한 곳. 이 도시. 시애틀. 일 년의 시간, 그 어떤 곳이라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저는 주저 없이 시애틀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애틀은 제가 처음으로 선택한 피난처이나 안식처였습니다. 시애틀에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원두커피, 달콤하고 청량한 와인의 향기, 여름날의 싱그러운 바람, 푸른 호수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살, 깊은 밤 잠 못 들게 하는 영화와 음악, 쓸쓸하고 아득한 바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적막한 시간.
그래요. 시애틀에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당신만 빼고.
저는 시애틀에서 가장 빛나는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인생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다시 오지 않을 한 시절을 시애틀과 함께 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하던가요? 혹시 고향의 정의가 자주 갈 수는 없지만 가끔 가게 되면 푸릇한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곳, 마음 깊이 자리한 언제나 그리운 곳, 살면서 힘들 때 문득 떠올리면 따뜻하고 아득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곳, 모든 창작물에 영감을 주는 곳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제 고향을 시애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여전히 서울과 시애틀의 시간이 함께 표시됩니다.
서울 오후 5시 55분
시애틀 오전 1시 55분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합니다. 평행 우주를 동시에 사는 것처럼 저는 서울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워싱턴 호수 근처의 공원을 산책합니다. 바쁜 일상에 진저리를 치며 마감 시간에 종종거리면서도 시애틀 작은 집 창가에 앉아 글을 씁니다. 깊은 밤의 적막과 차가운 공기가 창문을 흔듭니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번질 때까지 나무들은 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자리를 지킵니다. 그리고 저는 마무리 짓지 못한 글을 놔둔 채 사각사각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며 시애틀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합니다.
대체로 무심하고 이따금 애틋한 시간 속에서 저는 또 기억 속 사진 한 장을 꺼냅니다. 노란 튤립, ‘시애틀’이 먼 시간의 너머, 그곳으로 저를 데려갑니다.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하늘을 나는 튤립을 보러 가야 하는데 어쩌면 영영 그 아름다운 은유를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언젠가, 다시 시애틀에 가게 된다면 당신에게 이런 문장을 전하겠지요.
시애틀은 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여전히,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