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과 신뢰만 있으면 된다-2
서른 초반의 저녁은 지루했다.
퇴근 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아니면 격한 운동을 할 때에도 뭔가 마음 한구석엔 불안한 기운이 꿈틀댔다. 일과시간에 열심히 일을 했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 인지상정인 것이다.
분명 이 나이에 사춘기가 다시 온 것도 아닐 테고 그러면 이 불안한 기운은 도대체 뭘까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함에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서 생산적인 일이란 바로 경제활동이다.
돈을 벌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궁리 중 알바 형태의 투잡을 잠시 떠올리기도 했으나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차 IMF 시절 베스트셀러였던 로버트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계발서 관련 책들이 다 그렇듯 전반적인 내용으로는 쌀로 밥 짓는 이야기 같이 뻔한 스토리뿐이었다.
지루하게 책장을 넘기던 순간 딱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오며 심장을 요동치게 했는데
정확한 워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의 뉘앙스는 이러하다.
"나와 내 가족의 밥줄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마라"
딱 한 줄이었다. 더 이상의 내용은 볼 필요 없게 만드는 강력한 구절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해왔는가?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이 거기 있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 소시민들에게 직장이란 존재는 호구지책의
수단일 뿐이다.
회사의 존재 목적 또한 첫째도 둘째도 영리 추구이며 이타심과 감성으로 보듬어 주는 친목단체가 아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사원들의 존재 가치는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으며 그 부품이 고장을 일으키거나
낡아서 못 쓰게 되면 언제든지 신품으로 교체가 가능한 소모성 자재일 뿐이다.
이렇듯 분명한 종속적인 시스템 속에 나의 미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그 시점부터 독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전편에서 언급된 SK가스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로 끝났다.
촉매 연소 기술을 난방기기에 적용한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서 대기업 SK의 투자 유치협약까지 받아냈으나
지방 소도시 이름 없는 중소기업의 비루한 역량으로는 시제품을 제작하기에도 벅찼다.
속된 말로 깜냥이 안되었던 것이다.
시제품만 완성이 된다면 SK의 투자로 전용 생산라인 설비 셋업부터 SK 공급 유통망을 활용한 OEM 방식의
판로까지 확보할 수 있었으나 첫걸음을 떼는 게 어려웠다.
부족한 기술력, 각 지원부서의 현저히 떨어지는 맨파워 그리고 진취적이지 못한 중소기업 사장 마인드까지 일개 실무자 한 명만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시제품 제작기일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보다 못한 SK가 직접 나서 그들의 기존 가스난로 OEM 업체인 "Y" 社 와 협업해 보라며 실무자인 나에게 팁도 전수해주기까지 했는데 보다 황당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우리 자체 능력으로 시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SK에서 추천한 Y社와 협업하여 추진하자는 보고가 묵살됐다.
아니 묵살됐다기보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묵살한 척한 것이었다.
기술유출의 우려로 해당 안은 보류한다 하고선 담당자인 나를 배제한 후 타 업무를 맡겨놓고 팀장 본인이 위 프로젝트를 가로 채 갔다. 처음 시작부터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혼자 따낸 프로젝트를 위계에 의한 강압으로 강탈당한 것이었다.
그때 또 한 번 느꼈다. 회사란 곳은 나의 밥줄을 맡기면 안 되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그 팀장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위아래 없이 휘젓고 다니니 본인 자리에 불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기는 IMF 아니었던가.
밥줄 한번 끊기면 다른 곳을 찾을 수도 없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물론 팀장 주도로 넘어간 프로젝트는 결국 시제품을 출시도 못한 채 그대로 소멸되었다.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진취적이지 못하고 의지박약인 업체 대표를 비롯 팀원 성과까지 탐내는 팀장이 존재하는 이 아수라 같은 곳을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IMF 시기였지만 다행히 디스플레이 생산공정에 적용되는 필터 제조업체에 재취업을 하게 되고 대기업을 상대로 개발영업을 하는 부서로 배치되었다.
이직한 회사에는 미안했지만 나는 그 시기 호시탐탐 내 사업 아이템 찾는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제 막 IMF 졸업을 앞둔 90년대 말과 본격적인 새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격동의 시기였으며 산업의 주축은 디스플레이(Display) 시장이었다.
그중 벽걸이 티브이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할 무렵 디스플레이 패널의 시조 PDP 산업이 활황이었는데
내가 담당한 거래처가 바로 PDP 시장의 세계 최강자 삼성 SDI였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과의 거래 및 미래지향적 아이템이라 여긴 나는 이때부터 갈길을 정했다.
바로 여기서 독립할 아이템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업무방식도 여타 사원들과는 다르게 진행했다.
신제품 개발 및 공정개선과 관련하여 개발미팅을 진행할 때 항상 협력사들도 동석을 하게 되는데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미팅시간 전에 배석해 있음은 물론 기술자료 준비 및 뉴스기사 스크랩등으로 PDP 마켓 동향파악을 미리 습득한 후 참석하는 것이다.
대기업 제조라인에 근무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한다. 이때 외부 비즈니스맨들과의 교류로 정보를 얻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간은 서로에게 소중하며 모든 비즈니스에는 기브 앤 테이크가 중요하다.
원청업체로부터 먹거리를 받아오는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줄 것이 뭔지,
무엇이 도움 될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한다.
세계적인 마켓의 흐름과 경쟁사 동향 등을 정보로 제공해 주면 미팅이 끝난 후에도 종종 흡연장까지
동행하여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재직하던 회사는 LG와 오리온, 중국 BOE 등과도
거래를 했었기에 내 담당 거래처는 아니었지만 사내 팀원들과의 공유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정보들은 원청업체 담당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어 별 다른 이슈가 없어도 미팅 요청을 먼저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내가 제안한 안건은 대부분 신뢰를 했다.
여기서 본 글의 주제 키워드 중 하나인 "신뢰"라는 단어가 나온다. 신뢰에도 종류가 있는데
위와 같이 기술적인 정보 교류로 인한 신뢰 쌓기도 중요하지만 보다 원초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 쌓기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다음 " 대기업 사업권 따내는 방법" 편에서 후술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