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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침에 레몬을 썰었다. 여름에 레몬차를 아이스로 마시면 아주 상쾌하다. 물론 커피와 물 외에 딱히 다른 음료를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그닥 마시지 않는다. 책방겸 카페를 하다 보니 '수제레몬차'를 메뉴로 넣었고, 덕분에 때때로 이렇게 한 번씩 만든다.

나는 레몬차를 만들고, 장아찌를 만들고, 샐러드를 만들고 하는 것들을 꽤 즐겁게 하는 편이다. 아파트에 살 때도 레몬, 모과, 유자 같은 것을 썰어 차로 만들고, 곰취와 명이 등을 강원도와 울릉도에서 직접 공수해 장아찌를 담그곤 했다. 땅 있는 집에 살면서는 그 일을 더욱 크게 한다. 이웃집 오가피밭에서 오가피순을 따서 장아찌를 담그고, 할라피뇨 등은 직접 농사 지은 것으로 장아찌를 담근다. 김장을 위해 매실청과 양파청도 항아리 가득 담가 놓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몸이 좋을 때 일이다. 근 한 달 동안 몸이 아주 많이 안 좋았다. 처음에는 아이고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 이후 근 한 달 동안은 그 아이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몸살이 났다든가, 혹은 허리가 아프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그냥 몸이 힘든 상태. 그냥 진이 쫙 빠진 상태였다. 

예전에는 몸이 힘들면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괜찮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진이 빠진 상태였다. 앉아도 힘들고, 서서도 힘들고, 심지어 누워서도 힘들었다. 다행히 입맛을 잃은 것은 아니어서 고기를 좀 먹는 등 챙겨 먹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 흑염소를 먹으라고 해서 흑염소를 주문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봉씩 데워 먹었다. 그래도 마찬가지. 그러다 영양주사를 좀 맞아야겠다 싶어서 하루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양주사를 맞고 난 오후에는 더 맥을 못 추었다. 

몸이 안 좋으니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저절로 웃음기가 사라졌고, 목소리도 다운됐다. 사실 가장 힘든 것은 말하는 것이었다. 

말을 좀 아꼈다. 그동안 했던 쓸데없는 말들이 내게 병이 되어 돌아왔나 싶었다.  그럼에도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하루는 찾아온 이에게 예의를 지키느라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 날 이후 더욱 상태는 안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한동안 나는 계속 몸과 머리를 계속 움직였다. 카페와 책방 일도 하고(물론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아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서 드러누울 정도가 되면 하지 못할 일들을 나는 아프지 않으니 했던 것이고, 그러니 회복이 더딘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났다. 습관처럼 아침에 눈을 떠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시 누워 잠을 청해 깜빡 아침잠을 더 잤다. 스스로 게으름을 피웠다. 꼭 해야 될 일도 생각해보니 지금 꼭 안 해도 되는 일들이었다. 일을 쌓아두고 있으면 불편했는데, 그 마음도 버려졌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커피를 못 마실 정도였으므로 술은 더욱 한 모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맛있었다. 내가 괜찮아진 것이었다. 그날 한 친구와 우리 동네를 오래 걸었다. 용담호수를 끼고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도 마음이 빛났다. 이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혼자 생각했다. 

사실 컴퓨터에 코 박고 앉아 있는 일이 참 많다. 뭔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욕심은 결국 병을 낳는다. 다행히, 병으로 이어지기 전 진을 빼는 정도로 경고를 받은 것이다.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신간을 읽고 싶은 꿈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못 이루고 죽는다고 서운할 것은 없다 싶었다. 다만, 내 사주에 70에 인생이 꽃 핀다고 했으므로 아직 죽을 때는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큼한 레몬향 덕분에 기분도 상큼한 아침. 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그래도 숲에서 부는 바람은 시원해 그늘에 있으면 더운 줄 모른다. 어제 내린 비로 계곡에서는 끝없이 물이 흐르고 있다. 저 물처럼, 바람처럼 천천히, 자연스럽게. 좋다고 달려들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조금씩. 일도 관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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