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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어느 하루

서울 사는 후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밭에서 이것저것 챙겼다.상추는 이제 끝이어서 상추가 자라던 밭은 완전 풀밭이 됐다. 그 풀밭을 지나면 고구마밭이 있다. 고구마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역시 풀밭과 다름없다. 그 밭들을 지나기 위해 요즘은 장화를 신는다. 장화는 시골살이에 꼭 필요한 신발이다. 

고구마 밭 옆 고랑으로 방울토마토와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할라피뇨, 가지, 오이 등이 줄줄이 심어져 있다. 방울토마토부터 차례대로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어느새 플라스틱 바구니가 가득 찼다. 꽈리고추는 멸치나 오징어채 등을 넣어 같이 볶아 먹으면 좋고, 할라피뇨는 장아찌를 만들어 1년 내내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먹으면 좋다. 햄샌드위치를 만들 때 할라피뇨를 넣으면 그 맛이 더욱 좋다.  오이는 한동안 모양이 좋더니 요즘은 다 자라지 않은 채 금세 구부러지고 노랗게 된다. 거름이 부족하거나 물을 열심히 주지 않은 탓인 듯하다.

밭 맨 끝에는 옥수수가 있다. 언제 따면 좋을지 몰라 내내 두고 있었는데, 이웃에서 수염이 약간 시커멓게 되면 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시커먼 수염이 많았다. 옥수수 한 대에 한 개, 혹은 두 개의 옥수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중간쯤에 새끼 옥수수들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다 따자니 너무 많다 싶어 몇 개만 따자 했는데, 따고 보니 20개가 넘었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다시 갖고 와야 했다. 아침이라도 한여름이라 어느새 땀이 줄줄 흘렀다.

밭에서 나와 옥수수 겉잎을 따서 정리, 소금 약간 넣어 불에 올려놓고 바구니를 쏟아 분류, 각각 봉지에 담았다. 몇 끼 반찬은 충분하지 싶어 흐뭇했다. 

텃밭을 가꾸다 보니 누군가 오면 이런 것들이 선물이 된다. 한번은 상추와 고추 등을 따서 줬더니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다.

"어차피 제때 따지 않으면 버리잖아요."

마치 내가 버릴 것을 자기에게 주는 양 말해서 어째 이렇게 예의가 없나 싶었다. 농산물이 비싸야 하는 이유는 수확하는 수고 때문이다. 소위 인건비라는 것이다. 키우는 수고도 수고지만, 수확하는 수고가 없다면 우리 식탁에 올 수 없다. 다시는 그에게 뭔가를 주고 싶지 않다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나지 않으니 그가 와도 나는 여전히 뭔가를 챙겨 줄 것이다. 

솥에서는 어느새 옥수수가 다 익었다. 바로 따서 삶은 옥수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좋았다. 햇빛은 뜨거워도 그늘은 시원했다. 나는 파고라 아래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옥수수 4개를 한꺼번에 먹었다. 계곡물 소리, 바람 소리를 들을며 옥수수를 따서 삶아 먹는 내가 순간 실감나지 않았다. 더욱이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고 먹다니. 내가 누리고 사는구나 싶어 조금 기분이 좋기도 했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주변에는 잘 사는 이도 있지만, 잘 살지 못하는 이도 많다. 돈이 많다고, 혹은 적다고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아니다. 몇몇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특히 마음이 아픈 이들 몇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러다 가난하고 몸이 아파도 품위를 잃지 않는 이가 생각났다. 세상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는 그를 생각하자 옥수수를 들고 그에게 가고 싶어졌다. 나는 올려놓았던 다리를 가만 내려놓았다. 

후배는 오후 느지막하게 왔다.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그에게 나는 아침에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챙겨줬다. 후배는 마치 친정집에 다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나는 차가 시동이 걸린 후 잠깐만, 하고 들어가서 뭔가를 더 챙겨 갖고 나왔는데 그야말로 영락없는 친정엄마 모습이었다. 친정엄마는 무조건 주는 사람, 뭘 하나라도 더 챙겨 주는 사람 아닌가. 

나는 친정엄마 생전 친정에서 뭔가를 갖고 오는 것이 불편했다. 힘들어하는 엄마가 챙겨주는 것들을 받아들고 오기가 왠지 미안했다. 한 개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엄마에게 난 됐다고 빈 손으로 돌아서면서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만든 김치 같은 것들을 갖고 가는 다른 형제가 한편으로는 밉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주는 것을 즐겁게 갖고 가는 사람이 가장 좋았다. 별것 아닌 것에도 고맙다고 하고, 맛도 그닥 없는 음식도 맛있다고 하는 이가 좋아 나는 더 줄 게 없나 생각하는 것이다. 뒤늦게 친정엄마의 마음을 깨달았지만. 이제 엄마는 이 땅에 안 계시다.  

후배의 차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마치 친정엄마가 내 차가 멀어질 때까지 골목 끝으로 나와 서서 손을 흔들었던 것처럼. 해가 기울고 있었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나는 마당을 천천히 돌아보다 활짝 핀 연잎 앞에 한참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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