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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

잘 자라던 카네이션이 잎이 누레져서 보니 뿌리가 썩어 있었다. 서둘러 뿌리째 뽑아내고 잎이 괜찮은 것들은 옮겨 심었다. 지금 가장 아름다운 것은 도라지꽃. 이제 2년차 도라지는 훌쩍 큰 키로 여기저기서 봉오리를 터뜨리는 중이다.

어느새 시골책방 문을 연 지 3년째.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들꽃 같은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르고, 어떤 사람과 만날지 알지 못한다. 예전 인터뷰할 때 만난 사람들은 화원의 꽃이었다. 미리 섭외하고 만났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만나는 들꽃은 내가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할 꽃들이다. 수많은 길 중에 하필 그 길로 가고, 그 들꽃과 눈이 마주치고,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 있게 하는 것은 인연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헤어지는 것도 병이 된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으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때때로 힘들어도 풀을 뽑고, 책 속으로 들어가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시골책방에서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혹은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 나는 그들이 가고 난 후 오래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가끔, 이 시골책방에서도 무례한 사람들을 만난다. 다행히 잘 잊어버리는 습관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럴 때는 슬쩍 마음에 금이 간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그냥 잘못했다, 내가 부족하다 하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이유를 일일이 설명한다거나, 돌아서서 화를 내는 것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나름의 논리를 확고하게 갖고 있는 이에게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은 전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렇다고 돌아서서 내가 화를 내면 병이 내게로 온다. 

책방을 하면서 모두에게 친절해야 하고, 모두의 말을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듯이, 나 역시 책방을 운영하는 데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물론 뭐 대단한 건 아니어서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것 정도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나가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다. 

때때로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라, 밤에도 일을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면 나는 할 수 없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훅 들어온 세월 탓에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종일, 아니 며칠 동안 몸이 성하지 않다. 아름다운 들꽃 앞에서는 종일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제아무리 화려함을 뽐내는 꽃이라고 해도 잘린 꽃은 뿌리내린 들꽃보다 빨리 진다. 그 어떤 향기도 꽃이 지면 끝이다. 

책방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간다. 서로 예의를 지키고, 정도를 지키고, 그럼으로써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오죽하면 시골책방에서까지 무례를 범할까 안타깝지만, 그래도 시골책방까지 찾아올 때의 그 마음으로 어떻게 무례를 저지를까.

오늘은 햇빛이 쨍하다. 그러나 내일은 비 예보가 있다. 햇빛이 쨍한 날도, 비 오는 날도 다 좋은 이곳에서 그런 무례를 씻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에서 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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