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보존의 법칙
온 나라가 선거 열기로 들썩이던 며칠 전 아이 학교에선 신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4월로 연기한다는 가정통신이 왔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상황에서 어린이들의 입후보 및 투표 참여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섬세하고 타당한 결정이라 생각했고, 어른들의 선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쪽은 참 합리적이라 느꼈다. 당시 어른들의 선거에선 잘 준비되지 못한 사전투표 실책으로 인해 확진자들의 투표 갈등이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업무가 너무 바쁜 시즌이라 사전 투표일의 첫날은 퇴근길에 투표소에 들러 뭘 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고 둘째 날은 황사가 와서 외출하지 않았다. 높은 사전 투표율을 보면서 지금의 내 삶은 이상이나 구호나 비전보다는 밀린 업무와 돌보아야 할 아이와 황사 먼지에 더욱 민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거 당일이 되어 혼자 투표소를 찾았다. 어린 자녀들을 동반해서 투표소를 찾은 젊은 부부를 보았다. 과거의 선거 때마다 나도 아이를 데리고 투표소를 찾았었고, 이번엔 오미크론 여파로 더 이상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땐 아이에게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싶었던 부모였고 지금은 오미크론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모성이다.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의 고민 또한 세월 속에 같이 흘러가겠지. 내 삶이 머물러있지 않기에 그러할 것이다.
2장의 투표용지에 재보궐선거와 대선 투표를 각각 하고 왔다. 집에 있던 페이스 실드를 미리 챙겨 갔는데, 투표소 실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실드를 착용했다. 투표소의 직원들조차 아무도 쓰지 않았던 페이스 실드를 당당히 쓰고 투표소에 가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남의 시선 신경 쓰고 살 정도로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서 거침이 없나 보다.
그날의 페이스 실드에 대한 짧은 변론의 글이다.
첫째, 할 수 있다면 나는 코로나에 걸려 격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주양육자이다. 내가 확진되어 병에 걸리는 것보다도 엄마의 격리로 방치될 것이 분명한 내 아이의 생활과 삼시 세 끼가 더 걱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날의 페이스 실드는 말하자면 노 메이크업 일상 같은 것이었다. 아침에 아이 챙기고 출근하려면 화장할 시간이 없어 맨얼굴로 다니는 것이지 내가 쌩얼에 자신 있는 미모나 연령대는 절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접촉하게 될 투표소 방문이 진심으로 불편했고, 감염병 때문에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할 수는 더욱 없었기에 페이스 실드라도 쓰고 투표하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했다.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선택과 판단이 우선되는 인생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느낀다. 어쩌면 기표소 안에서의 고민과 선택도 그러했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지지하지만 한 표를 내주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그늘과 혼돈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상에 매이지 않는 삶이라면 오미크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감염병일 수 있겠다 이해한다. 돌봄 노동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내 한 몸만 챙겨 출근하면 되고 아픈 내 몸 하나만 걱정하면 되는 일터의 관리자들에게 오미크론은 얼마든지 몸 관리만 잘하면 재택근무도 가능한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 얼마 전 확진된 국무총리가 재택치료 중에도 현안을 챙기며 업무를 처리했다는 보도를 마치 국정 운영을 위한 총리의 미담인 것처럼 굳이 언급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역시도 돌봄 노동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남성 관리자일 것이다. 돌봄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풀타임 노동자들의 고충을 개인사로 치부해 버리려는 세상에 편재한 관리자들의 무지와 싸우는 일이 내겐 여가부의 존폐보다도 절실한 당면 과제이다. 일터에서 내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관리자들에게 딱딱하게 구는 것은 내가 성차별에 있어 급진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생활인의 문제의식은 생각보다 치열하고 깊어서 입장이나 노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저 생활을 기록해나가는 다큐멘터리 같은 각오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이 애초부터 노 메이크업-ist 였을 거라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싱글이었을 땐 나도 풀 메이크업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은 내 아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쓰는 일이 더 좋기 때문에 바쁜 아침시간에 화장을 하지 않을 뿐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가 전환될 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삶의 에너지가 전환되는 것일 뿐 타인의 취향을 너무 결정론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던 어느 날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낡은 화장대를 버렸고 굳이 다시 사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가 훌쩍 자란 미래의 어느 날엔 아주 곱고 화려한 vanity를 다시 갖게 되리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실 난 아주 사치스러운 영혼을 지닌 민낯으로 잠시 살고 있을 뿐이다.
인생에도 절기가 있고 때마다 다른 과업을 만나지만 큰 틀에서 우리의 생애주기는 하나의 인격으로 수렴된다. 그것을 성장이라 한다. 인생을 통섭적으로 보고 싶기에 요즘 유행하는 세대론적 접근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광역시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던 그때만 해도 지금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예상하고 진로를 결정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정했을 뿐인데 그 결과로 서울에서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우리 세 식구가 서울에 소재한 각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관계로(학교, 직장) 이곳을 떠나는 일은 거의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팍팍한 것 같아서, 이곳에선 연봉이 높거나 낮거나 집이 있거나 없거나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노인이거나 청년이거나 구분 없이 모두에게 삶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공통된 고충이 있고, 그 중심엔 주택 문제가 있다.
나부터도 그 이유로 이때껏 현직을 유지하고 있으니 주택 이슈로부터 내 삶도 크게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적성이란 게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우엔 오래 하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파편 같은 것들로도 다행히 이어올 수 있었다. 부모가 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단순하게 흘러갔던 것 같아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하는 삶에서 적성이나 고충을 고민할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은행 돈으로 서울에서 집을 샀기 때문에 아마도 꽤 오래 현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이 미생*에서 은퇴하는 시점이면 적어도 이 도시는 떠나 살 수 있지 않을까 장래희망으로 탈서울을 그려보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정책이 결실을 거두어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거나 또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에 우리 사회의 정책들을 지켜보긴 하겠지만 큰 기대는 없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페이스 실드라도 쓰고 거침없이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에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더 큰 두려움을 경험했기에 눈 앞의 작은 망설임 앞에서 용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쟁 속에 총칼을 들었던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시민들을 기억한다. 소중한 가족들과 삶의 터전을 잃을지 모른다는 절대적인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을 용기와 결단과 눈물의 증인들을.
*미생未生.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윤태호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