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기

여러갈래의 길

by 글라라

동네에 작은 영어학원이 있다.
아이들이 오가며 시끌벅적한 그곳, 바로 동네 영어학원,
내가 14년째 운영 중인 학원이다.
처음엔 언젠가 어마어마한 영어학원으로 빌딩 하나 차려보겠노라 다짐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작은 공간의 원장이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
오늘도 학원 번호키를 누르며, 평범한 하지만 특별한 수업이 되길 바라며 수업을 준비한다.

청소를 하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샘~ 안녕 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반가운 목소리. 6년 전 졸업한 학생, 진혁이다.
“어머나, 진혁이! 이게 얼마 만이니~ 잘 지냈어? 학교는 어때? 형 진구는 잘 지내고?”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 진혁이와 진구는 두 살 터울의
형제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찾아오는 날이면,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 실감하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인사를 건네 온다.
어떤 아이는 스치듯 얼굴만 보러 오고, 어떤 아이는 진지한 인생 상담을 하러 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공간은 단순한 영어학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잠깐의 ‘쉼’ 장소이기도 하다.

“무슨 일 있어서 온 거야, 진혁아?”
진혁이가 말했다.
“샘… 휴학을 할지 말지 고민이에요. 휴학을 한다 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계속 학교를 다니자니 졸업 후가 막막하고요…”
여러 고민들을 털어 놓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문뜩 요즘 20대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조차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자기 길을 찾으려 한다니...

“진혁아, 선생님도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르겠어.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 살게 되더라.
그런데 너는 벌써부터 스스로의 길을 찾고자 하니… 그게 참 대단해.” 말하며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20대는 그저 살아내기 바빴다.
없는 살림에 야간대학을 다니며 그저 졸업만을 꿈꿨다.
‘내가 원하는 삶’이나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였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배우고, 찾고, 고민하고 있다.
특기라고 할 만 한 건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찾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취미에는 ‘독서’, 특기 란에는 ‘없음’이라 적었던 그 시절의 나, 지금도 특기를 찾고 있는 중이다.

“진혁아, 선생님이 늘 하는 말 기억하지?
길은 하나가 아니야.
고등학교 준비할 때도, 대학을 갈 때도… 늘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잖아.
길을 선택한다는 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과 같아.
때론 돌아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지.
하지만 돌아가는 길엔 예쁜 꽃도 있고, 깊은 숲도 있고, 눈부신 바다도 있어.
그 모든 경험이 결국 너를 만들어줄 거야.”

진혁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선생님은 길을 잘 찾으신 거예요?”

나는 잠시 피식하며,
“글쎄… 난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해 볼 틈도 없이 살아왔지.
돈을 벌어야 했고, 내 자녀를 키워야 했으니까.
그래도 오늘 진혁이 덕분에 나도 내 길을 돌아보게 되네. 고맙다.”
진혁이가 웃으며 대답한다.
“선생님은 늘 정답은 안 주시고, 힌트만 주세요. 다시 고민 할 수 있게요.
이제 그 답을 찾아 봐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해요. 나중에 형이랑 맥주 한잔해요, 선생님!”

“오~ 진혁아 형도 너무 보고 싶네!
예쁜 청년들과 마시는 맥주는 언제든지 환영이지~”
몇 분 뒤,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는 소리에 진혁이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나갔다.


요즘 아이들, 생각 없이 산다고들 하지만, 과연 그런 걸까.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아파하며, 더 많이 배우고 있지 않나...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정답처럼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20대들을 응원하려한다.
그들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희망과 아픔이 함께 올 것이니.
그리고 그 아픔도 결국,
그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나는 믿고 있으니,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동네 학원 선생님일지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인생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 남은 시간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려 한다.


누구나
각자의 길을 찾아 가려 해요.
나는 과연 그 길이 내가 찾아가는 길인지.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지 않는 길이라,

맞게 가는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지금도 나의 길을 찾고
앞으로도 나의 길을 찾고 싶어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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