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너의 마음

by 글라라

각자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다.
나의 목소리는… 상냥하리라 생각하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의 목소리는...
그럼에도 늘 나만의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내 목소리는 청량할 거라고…


오늘도 수업을 하며 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닌 아이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려주지 않는 목소리.
‘이제는 들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유도해보지만, 아이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처음엔 소심해서 그런가, 쑥스러워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런가, 나만의, 혼자만의, 생각과 고민을 되새기며,
오늘도 나는 그렇게 수업을 이어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아이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거 읽어봐” 하고 말하면
“………”
소곤소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돌아왔다. 그럴 땐 나는 그저 “Okay”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그날, 아이가 내게 다가와 살포시 물어보았다.
정말 작은 목소리로, 귀를 바짝 기울여야만 들리는 그 목소리로...
“선생님, 저 이 문장 해석이 어려워요. 아무리 해도 모르겠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해 하며 목소리를 낮춰 말을 해 주었다.

“이 문장은 사역동사라서 이렇게 해석해야 해.”하며,
설명을 다 하고 “이해가 되었어?” 물었더니
“네~” 하고 대답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나는 속마음으로는 살짝 놀라기도 했고, 드디어 나와 친해졌나 하는 생각에 신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다시 대화를 시도해보려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맴돌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그날 저녁, 아이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드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학부모께서는 무척 놀라시는 목소리로 대답하시며 오늘 있었던 일을 몇 번이고 재차 확인하셨다.

그러고서는 왠지 모를 안도감의 목소리로 몇 년간 있었던 집안 이야기를 조심스레 털어놓으셨다.
“이제야 우리 가족 서로가 조금씩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순간, 나도 모르는 감정에 눈물이 조용히 흐르고 말았다.
그 아이의 모습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나보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여름.
엄마는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하시며 매일 같이 출근하셨다.
비 오는 그날에도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고,
출근하는 엄마에게 “백 원만~” 하고 큰 목소리로 졸랐지만,
엄마는 “일 끝나고 줄게. 동생 잘 챙기고 있어” 하고 급히 준비하시고 나가시는 엄마.
그런 바쁜 엄마의 뒷모습에 “싫어 지금 달라고”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응석을 부렸던 나.
그 날이 엄마와 나와의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헤어짐의 시간을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은 젊었던 엄마의 목소리, 그리운 엄마의 목소리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3년 후,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새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나의 두 번째 어머니.
나와 동생을 정성껏 돌보며 온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신 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
하지만 나는, 차가운 목소리를 지니고 다녔다.
전학생이었던 나는 스스로 왕따를 자처했고,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새엄마에게는 유난히 고집스럽게 굴며,
속으로는 ‘지금 엄마마저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목소리를 지닌 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늘 냉정하고 차갑게 굴기만 했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조금씩 세상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웃는 목소리의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났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고,

어느새 성인이 되어 나도 모르게 엄마가 되어있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은 나의 두 어머니 모두 하늘나라에 계신다.
이제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얼굴을 볼 수도 없어 ‘보고 싶다’는 말만 하게 되는 지금의 시간들.
그래서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된 ‘보고 싶다’의 말이 이렇게 가슴 아픈 말이라는 걸,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마 그 아이도,
내가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들을 조금씩 겪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 속 또 다른 ‘나’와 싸우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릴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많은 이들이 놓치고 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그 시절의 나도, 사람들이 때론 모른 척해주기를 바랐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들이, 그 시선 속에 담긴 측은 함들이.
그 측은함은 어린 나에겐 챙피 였으니까.
어린 나는 그 시선이 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밝게 자라날 것이다.
마음속으로 지지해주는 가족도, 어울릴 수 있는 친구도, 따뜻한 어른들도 그 아이 곁에는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 다음 날, 그 아이는 여느 날처럼 말없이 수업에 집중하여 앉아 있다.
나도 여느 날처럼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대화를 시도해본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서로의 얼굴엔 미소가 살짝 살짝 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함께 만들고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목소리로 슬픔을 나누고
행복을 공감하며 살아가요.

오늘도 나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슬픔이 있는 곳엔 기쁨을,
어둠이 있는 곳엔 밝음을,
불행이 있는 곳엔 희망을,
나의 목소리를 나누며,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요.

화요일 연재
이전 02화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