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나의 아파트는 오래된 구축이라 베란다가 있다.
확장공사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공간의 초록이들이 선물해주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 자라는 곳이 되었다.
지금 이 다육이는, 작은 선물로 받았던 초록이었다.
이 초록이는 나의 불찰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다시 살려낸 아이이다.
처음엔 식물들이 주는 선물을 몰랐기에 많이 시들게도 하고, 때로는 잃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초록아이와 함께하면서, 나 역시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아이가 스스로 번식하면서 점점 많은 가족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작은 몸에서 자라난 꽃 모양의 다육이들은 단지 초록빛 하나일 뿐인데도,
마치 여러 색을 품은 듯 다채롭고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매번 바라볼 때마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 되어,
나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쉬운 날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론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듯한 절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모든 게 끝나버린 것만 같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는 날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 끝일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듯,
설령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라도 붙잡고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에도 언젠가는 다시 꽃이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다가오더라도 말이다.
어둠속에 작은 빛이 큰 빛으로 느껴질 때,
마치 죽은 줄만 알았던 다육이가 다시 생명을 틔우고, 홀로 외롭지 않게 새로운 가족을 품어내며 초록의 시간을 피워낸 것처럼.
어쩌면 삶은 그렇게,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조용히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준비가 되었을까요?